신자유주의는 진행 중

신자유주의란 국가의 시장 개입을 자제하고 가능한 시장을 자유화하여 시장 자체가 자연적으로 조절 및 해결하도록 하는 경제 이론이다. ‘국가가 경제에 개입하는 것을 반대하고 자유로운 시장을 통해 국가의 부를 확대시켜 사회적 복지를 극대화해야 한다.’라는 19세기 고전적 자유주의 노선을 이어받아 1970년대에 등장하였다. 1930년대 세계 경제가 대공황을 겪을 때, 그때까지의 기존 자유 시장주의를 무너트리고 정부의 개입을 강조한 것이 케인주의 또는 케인스이론이고, 이후 경제 정책의 기조가 되었으나 1970년대 장기 불황이 이어지자 다시 자유 시장주의로 회기하게 된 것이다. 당시의 경제 위기가 무리한 복지 정책과 공공 부문의 확대, 자본에 있어서의 정부의 지나친 개입으로 초래되었다고 보았던 것이다. 1980년대 영국의 대처 정부와 레이건 정부의 정책으로 대표되는 대처리즘과 레이거노믹스가 신자유주의의 대표적인 정책이라고 할 수 있다. 영국의 대처는 비효율적인 국영 기업의 민영화, 복지 예산의 축소, 정부 조직 축소, 세금 감면, 노동 유연성의 확보를 통해 기업 환경을 개선하여 시장을 활성화 했다. 미국의 레이건 대통령도 대처와 비슷하게 복지 예산과 환경 예산을 축소하고 세금을 감면하는 시장 활성화 정책을 펼쳤다. 이런 신자유주의적 전략은 영국과 미국을 비롯한 강대국의 세계 질서 논리에 의하여 세계 각국의 개방을 촉구하게 되었고, 우리나라에서도 1990년대 문민정부 시절부터 경제 정책을 수립하고 시행하는데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세계는 제1차 세계대전과 제2차 세계대전의 격변을 겪고 본격적으로 이데올로기 실험에 들어갔다. 서방 세계의 자본주의와 북유럽의 사회주의, 소련 연방과 중국으로 대표되는 공산주의가 그것이다. 자본주의는 16~18세기 영국과 프랑스를 중심으로 발달했으며, 산업 혁명에 의해 확립되었고, 전 세계로 파급되었다. 자본주의는 이윤을 추구하고 극대화하는 경향이 있으므로 이상적인 제도가 될 수 없다고 주장한 것이 1867년에 발행된 ‘카를 마르크스’의 『자본론』이다. 간추려 보면 자본에 의한 잉여 가치는 자본가에게 귀속되고, 가치를 생산한 노동자를 소외시키기 때문에 착취에 시달린 노동자들은 봉기할 수밖에 없고 자본주의는 결국 망한다는 것이다. 시쳇말로 자본주의는 힘 센 놈이 우위를 점하는 ‘약육강식’의 세계이므로 이상적인 사회가 될 수 없다. 그러니까 모두가 잘 먹고 잘 사는 사회를 만들 필요가 있다. 그것이 곧 ‘공산주의’ 이론이다. 같이 일하고, 공평하게 나누자는 것이다. 그래서 자본주의와 공산주의는 서로가 이상적인 사회라고 주장하면서 대립에 들어간 것이다. 그 가운데에 공산주의와 자본주의를 적절하게 섞은 중도 국가들 즉, 노르딕 모델(Nordic model)이라 부르는 북유럽 국가들이 있다. 국가가 복지와 시장 경제에 적극 개입한다. 자유주의보단 사회주의 쪽에 기울었다고 할 수 있다. 자유민주주의와 비교하여 ‘사회민주주의’라고 부른다.

1980년대 말 소련 연방은 극심한 경제 위기가 찾아왔고, 결국은 1989년 연방이 해체되었다. 자유민주주의와 공산주의로 대립되는 냉전 시대가 종식된 것이다. 민주주의(Democracy)의 어원은 Demos(민중)와 Kratos(지배)의 합성어로, 즉 ‘민중에 의한 지배’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자본주의에 대비되는 용어는 공산주의다. 민주주의에 대비되는 용어는 사회주의이다. 전자는 경제 용어이고 후자는 정치 용어이다. 그러므로 민주주의와 공산주의는 대립하는 용어가 아니다. 북한의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이라는 이름은 공산주의와 민주주의가 공존할 수 있기 때문에 그 자체로는 전혀 문제가 없다. 그런데 전 세계의 공산주의를 채택하고 있는 나라는 실제로는 ‘독재’거나 ‘전체주의’라고 할 수 있다. 공산당의 막강한 권력이 그렇게 만든 것이다. 즉 공산주의는 있지만 민주주의는 없다. 그러므로 북한은 국가 명칭에 ‘민주주의’를 사용하는 것이 모순이 되어버렸다. 논거가 샛길로 빠져들었지만 아무튼 자본주의가 민주주의를 충실히 이행하면서 부작용을 헤쳐 가며 성장하고 있을 때, 공산주의는 민주주의를 표방한 독재, 전체주의를 하다가 망해버렸다. 이데올로기 실험은 소련의 붕괴로 인해서 자본주의에 입각한 자유민주주의가 승리한 것이다.

공산주의가 경제 붕괴로 쓰러졌고, 전염병처럼 번지던 신자유주의는 더욱 힘을 얻게 되었다. 공산주의 국가들은 자본주의를 받아들였고, 북유럽의 사회주의 국가들은 복지 예산을 줄였다. 신자유주의가 태동하던 1970년대에는 장기 불황의 여파로 기업의 이윤율이 떨어지고 있었다. 기업은 살아남기 위해서 투자를 하고 경비를 낮추었다. 그 결과 생산성은 높아지고 경제는 활성화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이윤율은 50~60년대만큼 회복되진 않았다. 과잉 생산은 점차 증가되었고, 국제간 경쟁은 더욱 치열해진 까닭이었다. 이윤율을 높이기 위해서 생산시설을 자동화하여 생산성을 높이고, 노동자를 해고하고, 인건비를 낮추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출이 오르고 이윤의 폭은 커졌지만 이윤율이 오른 것은 아니었다. 와중에 부자들은 자본을 더욱 불려나갈 수 있었지만 힘이 없는 노동자들은 일자리를 잃고 삶은 점점 피폐해졌다. 자유주의 및 신자유주의는 빈부 격차가 심해진다는 문제가 있다.

기업은 이윤을 추구한다. 그것이 기업의 목적이다. 그 기업에 종사하는 직원들은 기업의 성공을 자신의 성공으로 믿고 일한다. 실제로 기업에 이윤이 나면 직원들에게 서운하지 않을 만큼 분배를 한다. 늘 기대치에는 못 미치지만 그래도 기업의 경쟁력 확보를 위해서는 이윤의 상당 부분을 재투자하여야 한다는 것을 신입사원 시절부터 배워왔기 때문에 이해할 수 있다. 시간이 지나면 진급도 하고 월급도 오른다. 그러면 살기가 더 좋아질 것이다. 그것이 샐러리맨의 믿음이다. 기업이 이윤이 나면 먼저 재투자 부분을 떼고 자본투자자→경영진→직원→계약직 직원→파견직 직원, 하도급 업체 등의 순으로 나눈다. 이것이 분배 서열이다. 대략 자본 투자자와, 경영진이 이윤의 90%를 가져가고, 직원이 5~9%를, 나머지 1~5%를 가지고 하위 서열에 분배한다. 문제는 제일 하위 서열의 인구 밀도가 너무 높다는 것이다. 자본가가 투자를 하고 노동자들이 가치를 생산하여 판매를 하면 이윤이 발생하고, 그 이윤을 노동자들에게 분배하여 노동자들이 소비를 한다는 자본주의의 선순환 이론은 분배 과정에 막혀서 제대로 돌아가질 않는다. 게다가 IMF, 외환 위기 등에 학습된 기업들은 이윤을 분배하지 않고 쌓아 놓기만 한다. 매년 기업의 매출과 이익 규모가 눈덩이처럼 불어나도 노동자들은 살기가 여전히 팍팍하다. 월급이 올랐지만 물가도 그만큼 올랐기 때문이다. 분명히 국민 소득은 3만 불이라는데 국민들 대다수가 그 수익에 못 미친다. 기업과 부자들이 이윤을 대부분 가져가고 직원들에게는 아주 적게 분배하기 때문이다. 그나마 직원들은 낫다. 그 분배 서열에서 먼 사람들이 있다. 계약직, 파견직, 일용직, 하청 업체 직원들이다. 말 그대로 먹고 살기 힘든 가난한 사람들이다. 싸울 힘도 없는 사람들이다. 노동자가 힘들면 소비가 둔해진다. 그러면 기업의 매출이 줄고, 기업은 이윤을 유지하기 위해 노동자들에게 분배하는 임금을 줄일 수밖에 없다. 악순환이 계속되는 것이다. ‘부익부 빈익빈’이 되는 것이다. 이것이 자유시장의 문제다.

내가 몸담았던 회사는 국내 10위권 안에 들어가는 대기업이고, 말만 하면 누구나 알 수 있는 지역 산업 단지의 매출 40%를 차지하는 기업이다. 지역 경제에 한 몫을 하고 있기 때문에 자치 기관과 지역민의 여론에 민감하다. 10여 년 전에 사고로 지역에 환경 오염을 일으켜 홍역을 치뤘다. 그때문에 지역 민심을 달래려고 대략 1000억 원을 들여서 문화 시설을 짓고 시에 기증했다. 회사에서는 사회 공헌 사업의 일환이라고 하지만 그게 쉰 소리라는 것은 삼척동자도 알 소리다. 그런데 그 회사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 직원들 신분이 본사에서 파견된 직원 그리고 직원이 고용한 사람, 직원이 고용한 사람에게 고용된 계약직들이 있다. 이 3계급 밑에 국가가 보장한 최저 임금을 받는 단기 계약직, 일용직, 초단기 일용직, 도급 업체가 있다. 최저 임금이란 그 정도도 안 되면 굶어 죽겠다 해서 법으로 보장해주는 임금이다. 분배 서열에서 상위에 있는 사람들은 그것이 문제인지 모른다. 자기들은 배부르고 등이 따뜻해 신경 쓸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정해진 파이에서 하층에 분배를 많이 하게 되면 자기들 몫이 적어지게 될까봐 표시 나지 않게 파이 분배를 제한한다.

어디서나 신자유주의는 진행 중이다. 끝.


박 영 철

GS칼텍스 예울마루 극장운영팀장
전) (사)무대음향협회 제4회 회장 역임
전) LG아트센터 총괄국장
전) 서울예술의전당 음향감독
전) 세종문화회관 음향감독
저서: 무대음향개론, 무대음향설비,공연장건축설계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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