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히 찾아온 기회가 운명이 되다

한 송 헌 의정부문화재단 무대운영부 부장

1987년 국립극장 음향감독을 시작으로 의정부예술의전당 개관 멤버 그리고 지금 이곳에서 정년을 앞두고 있다. 크게 관심이 없던 분야가 점점 몸에 녹아들면서 이 일을 즐기고 사랑하게 되었다는 한송헌 부장. 누구보다 바쁘게 지났던 지난 36년간 음향감독으로서의 발자취를 따라가 본다.

취재, 사진 | SSM 취재부

본인 소개 부탁드립니다.

⇨ 저는 1987년 3월 16일 국립극장에 입사, 근무하다가 2001년 2월 15일부터 현재까지 의정부문화재단에 근무하고 있는 한송헌입니다. 올해로 36년차이고, 12월 정년퇴직을 앞두고 있습니다.

음향감독이라는 직업을 선택하게 된 계기가 있었나요?

⇨ 아니요, 사실 크게 관심 있던 직종도 아니고, 입사 전 공연장이라고는 고등학생 때 인천시민회관에서 연극 ‘맹진사댁경사’를 본 게 유일한 경험이었어요. 그때 당시 시험이 끝나면 학생들이 단체로 문화 활동을 목적으로 영화를 주로 관람했었는데, 우연치 않게 연극이란 걸 관람하게 되어 그 계기로 공연장을 찾은 거죠. 이런 제가 공연장에서 정년을 할 줄은 몰랐습니다.

크게 관심 있던 분야가 아니었는데, 어떻게 국립극장 음향감독으로 입사하게 되었는지 궁금합니다.

⇨ 군대 제대하고 6개월 정도 일반 회사에 근무하다가 제대 후 채용사이트에 제출했던 이력서를 보고 우연치 않게 국립극장에서 채용 의뢰가 한번 들어왔었어요. 그래서 면접보고 입사하게 되었죠. 공채 1기로 9명 정도 입사했고, 무대팀 직원이 70여명 정도였는데, 그중 제가 제일 막내였어요.

공연장이 많지 않았던 시기였는데요.

⇨ 맞아요. 그때 당시 전국에 1,000석 이상 공연장이 서울 외에는 흔치 않았어요. 전국에 공연장을 건립하기 전, 스태프들이 견학할 수 있는 공연장이 국립극장과 세종문화회관 밖에 없었기 때문에 많은 분들이 찾아주셨죠.

처음 근무했던 공연장이라 기억에 많이 남으실 것 같습니다.

⇨ 정말 많은 에피소드가 있고, 추억과 애증이 교차하는 공연장입니다.

제 2차 남북교류 공연, 외국귀빈 방문과 경호차량 도착 후 이동 모습, 국립극장 앞마당에 김현희가 헬기 내릴 때 모습 그리고 1992년 서울예술단 공연 ‘꿈꾸는 철마’ 무대 사고 당시 현장에 있었고, 국내 유일의 여성 단원들로 구성된 여성국극단 창극공연과 국립극장 7개 전속단체 공연도 함께 하면서 정말 많이 배우고 즐기면서 재미있게 보냈죠.

여러 가지 에피소드가 떠오르는데, 제가 입사한 지 두 달쯤 됐을 때에요. 연극 ‘들오리’(빌단덴-네덜란드1884년) 공연 전 작고하신 음향실장님(공성원선생님)이 카세트 레코더(SONY TC D5M)를 주시면서 닭장 속 효과음(놀란 닭 울음소리)을 녹음해 오라고 하셨거든요. 그 당시 아무것도 몰랐던 제가 친구와 녹음기를 들고 옆 동네 인천 계산동으로 가서 닭 키우는 주인에게 양해를 구하고 녹음했는데, 그 효과음을 공연에 사용했어요.

그리고 88서울올림픽대회 문화예술 축전의 일환인 일본 가부키 공연과 94년 한일 문화교류사업 일환인 극단 사계의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 공연을 하게 되었어요. 셋업부터 공연까지 배우와 스태프들이 작품에 임하는 자세를 보면서 배울 점이 너무 많았고, 저에게는 신선한 충격이었습니다. 특히 사계팀 공연 당시 초장기 무선마이크(베가)는 땀과 습기 등에 대한 차폐가 완벽하지 않아 문제가 되었고, 그래서 은행에서 동전 교환할 때 주던 비닐봉지로 송신기를 보호하곤 했었거든요. 그런데 사계팀 음향엔지니어가 콘돔을 사용하는 거예요. 콘돔을 세척한 상태에서 송신기를 감싸더라고요. 그리고 공연이 끝나자마자 무선 마이크를 소형 온장고에 넣고 보관하여 땀으로 생긴 습기까지 제거하는 방법을 보면서 ‘아! 이거 좋은 방법이다.’ 느꼈고 이후에 온장고를 구입 해 사용하였습니다.

연극 공연을 하면서 겪은 에피소드가 많은데, 한번은 연극 소품이었던 TV 전환을 했었는데요. 화면이 배우 쪽으로 향하게 전환해야 하는데 객석 방향으로 거꾸로 해서 무대 밖에서 전국환선생한테 한 소리 들었던 적, 그리고 연극 공연할 때 릴 테이프를 많이 쓰던 시절이라 음악이나 효과음 사이사이에 리더 테이프를 붙였어요. 이 테이프가 자주 쓰거나 특히 여름 같은 경우에는 잘 떨어지는데, 하필 브리지 음악 플레이 중에 테이프가 떨어져서 음악이 끊긴 거예요. 그래서 그 다음날 장민호 선생님 분장실에 직접 찾아가서 사과를 드렸던 적, 원로배우이신 백성희 선생님이 주연한 연극 ‘무의도기행’도 했었는데 그때 릴 테이프 3개와 카세트테이프 2개를 함께 플레이하면서 정신없이 연극을 진행했던 일이 특히 기억에 남네요.

한창 국내에 창극이 흥행할 당시 무선마이크가 이상이 생긴 적이 많았는데, 주연인 안숙선선생이 무대 밖으로 퇴장할 때 제가 달려가면 선생님이 치마를 훌러덩 올리셔서 바로 송신기를 교체했던 적이 많이 있었죠. 워낙 선생님과 자주 공연을 하다 보니 제가 다가가기만 하면 그러려니 치마를… ^^

마지막으로 행사 출장을 나갔던 일은 영국 대처수상 방한 당시 영빈관 행사였네요.

이야기하다 보니까 참 많은 일들이 있었네…^^ 일 년에 시말서 한, 두 번 쓰는 건 일도 아니었으니까요. 이런 현장경험 덕분에 오늘날 제가 있지 않나 싶습니다.

의정부예술의전당 전경

해외투어 공연도 많이 다니셨는데,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 1994년에 미국올림픽 기념 LA파크에서 공연한 적이 있었어요. 공연 마치고 다음날 제가 앉아 있던 부스에서 폭탄 사고가 일어났더라고요. 다른 공연을 하러 이동 중에 단원이 CNN방송에 나왔다고 이야기해주는데, 다들 순간 아찔했었습니다.

그리고 90년대 초 북유럽에 있는 한 공연장에서 오페라를 관람했는데 무대를 꽉 채운 3층짜리 세트가 있었어요. 그 세트가 백스테이지에서 주무대로 이동하여 공연을 진행하고, 인터미션 시간동안 무대 하부로 하강하는데 세트 전환을 관객들에게 오픈 하더라고요. 승강무대가 동시에 올라오고 내려가는 것을 신호 동기화(모터의 회전속도와 위치제어-메인무대하부 리프트의 다단모터구성 시)라고 하는데 국내에는 그런 공연장이 없었거든요. 세트바튼 동기화가 된 지도 얼마 안 되었는데, 그때 당시 이미 유럽에는 승강무대 동기화 기술을 가졌다는 자체가 놀랍고,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 92년인가 체코 국립극장에 갔던 적이 있는데, 조명 포커싱 작업을 하지 않는 거예요. 음향과 무대는 셋업을 진행하고 있는데 왜 안 하나 싶어서 저희 조명감독이 언제 조명을 맞추는지 물어봤거든요. 그러자 현지공연장 조명감독이 “자, 원하는 포지션에 앉아 봐요.” 이야기하더니 콘솔만 조작하는 거예요. 무빙 라이트였던거죠. 정말 판타스틱 했어요.

국립극장에 계시는 동안 정말 바쁘게 보내신 것 같습니다.

⇨ 네, 국립극장에 14년 동안 있었는데 자체 공연부터, 지방 투어와 해외 투어까지 정말 바빴어요. 문화 사업은 경기와 비례하는데, 그때는 경기도 좋았고 관객들도 많았고 아마 대한민국 최고 문화 예술계의 전성기가 아니었나 싶을 정도로 정신없었어요. 처음에는 아무것도 모르고 음향 일을 시작했는데 바쁘게 지내다보니 자연스럽게 몸에 녹아 들면서 이 일이 너무 재미있고 좋아졌죠. 막이 오르면서 관객들이 엄숙해지고, 공연 중간 중간 관객과 같이 호응하고, 엔딩 음악이 끝나면서 박수와 환호가 들리고, 그리고 막이 내려오고 관객이 자리를 뜰 때면 알 수 없이 밀려오는 공허함 등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즐거움이었습니다.

국립극장에서 14년을 함께 하다가 2001년에 의정부예술의전당으로 오시게 된 거죠?

⇨ 네, 2000년대 초반에는 경기북부 유일한 공연장이었고, 공연 예술 불모지나 다름없었어요. 처음에는 보이지 않는 타 부서와의 기 싸움도 있었고 이런 현실에 정신적으로 힘들었는데, 개관 당시 함께 온 국립극장 출신 동료들과 끈끈한 동료애로 오늘까지 왔습니다. 묵묵히 그리고 체계적으로 운영하고 있기 때문에 20년 동안 사고 없이 공연장을 잘 이끌어 오지 않았나 싶어요.

개관 당시 음향 시스템이 열악했다고 들었습니다.

⇨ 처음 공연장에 왔을 때(2001년 2월 15일) 음향은 사실 강당 수준이었습니다. 대한민국 공연장의 홍보마케팅 개척자(?) 구자흥 초대관장님도 전기음향이 열악하다는 것을 인지하시고 2003년부터 2004년까지 2년에 걸쳐 메인스피커 교체 작업을 할 수 있게 여러모로 애를 써주셨어요. 참으로 훌륭하신 분이십니다.

여러 가지로 현실적으로 부딪힐 때가 많았는데 이직을 후회하신 적은 없었는지 궁금합니다.

⇨ 후회를 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어요. 중이 절이 싫으면 떠나야죠.^^

국립극장에 있을 때는 업무도 많았고, 지방이나 해외로 출장도 자주 다니면서 바쁘게 지냈잖아요. 여기에서는 전에 비해 여유가 생겨서 그동안 쌓았던 테크닉을 활용하여 의정부예술의전당을 찾아온 관객들에게 더 좋은 사운드를 들려줄 수 있게 되었고, 그에 대한 자부심을 느낄 수 있어서 너무 좋았습니다.

국립극장에서는 음향에 대한 경험과 견문을 넓혔다면, 의정부예술의전당에서는 그것을 토대로 공연 예술 활성화를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 계신데요. 의정부음악극축제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 네, 의정부문화재단과 의정부음악극축제는 함께 성장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요. 지역 주민들이 문화 혜택을 누릴 수 있고, 지역을 알리는 자부심을 갖게 해준 계기가 되었죠. 공연장에서 뿐 만 아니라, 야외무대 그리고 찾아가는 무대까지 다양하게 공연을 하는데, 초반에는 축제기간을 45일을 할 정도로 정말 바쁘게 진행했어요. 이런 희생과 열정이 있었기에 오늘날 의정부문화재단 위상이 여기까지 오지 않았나 싶습니다.

현재 의정부예술의전당 리모델링을 진행하고 있는데요.

⇨ 원래 2022년 1월부터 12월까지 리모델링을 진행할 계획이었는데 해상 물자 수송이 원할치 못하고 또 공사 진행 중 천장 석고보도가 낙하하여 추가공사로 이어져 지연되고 있어요. 올해 11월 1일 개관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무대 기계 파트의 건축설계는 한들, 무대설계는 서승욱(TSD 스테이지) 그리고 시공사는 한일TNC입니다. 구동 방식은 기존 웨이트 방식에서 윈치 방식으로 변경하였고, 기존에 조명바튼과 세트바튼이 구분되어있었는데, SUS LIGHT를 포함한 모든 조명 배튼을 제거하고 세트바튼화 했습니다. 또한, 세트바튼 수를 대공연장은 기존 16개에서 35개(700kg)로 소공연장은 12개에서 15개(500kg)로 증설했습니다.

한일TNC 특허인 고장예측시스템은 아직 진행 중이어서 검증은 시간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무대하부는 사용빈도수에 비해 유지관리가 어려웠던 사이드웨건과 백스테이지 회전무대 및 이동무대 구동부를 제거했습니다.

무대 조명 파트는 한삼시스템에서 시공 중입니다. 디머 시스템은 ADB사 디머를 설치했고, 대공연장은 288채널에서 384채널로 소공연장은 192채널에서 288채널로 증설했습니다. 대공연장 콘솔은 ETC EOS APEX10, 소공연장 콘솔은 EOS GIO@5를 설치했습니다. 조명 인프라도 개선되어 필요한 포지션에 필요한 조명기를 설치할 수 있도록 설계했습니다.

마지막으로 무대 음향 파트는 MI솔텍에서 시공 중입니다. 메인콘솔은 MIDAS HERITAGE2000에서 AVID VENUE S6L 32D로 스피커는 L-ACOUSTIC ARCS에서 ADAMSON LEFT, RIGHT 각각 IS10 3통과 IS10N 8통, CENTER IS7 10통을 설치했습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ARCS 마니아인데요. 2003년도에 제가 설계하여 설치한 메인스피커 가 무대바닥으로 내려와 시야에서 사라지는 모습에 묘한 감정이 올라오더라고요. 참 좋은 스피커인데 시대적 흐름에 메인타이틀 을 놓는 것을 보면서 내 인생과 비슷하다는 생각에 설움과 아쉬움이… ^^;;;

이제 협회 이야기로 넘어가서 초창기 ()무대음향협회 모습은 어땠나요?

⇨ 처음 시작한 모임이 소리회에요. 창단 초기에 14명인가 15명이었는데 그중 한 명이 저였고요. 그때 당시 주축이 되었던 선배들이 협회의 필요성에 대해서 역설하셨고, 선배들의 노고가 있었기 때문에 (사)무대음향협회가 만들어졌다고 생각합니다.

()무대음향협회가 회원들을 위해 어떤 노력을 해 주면 좋겠는지 말씀해 주세요.

⇨ 현재 저는 (사)무대음향협회 이사가 아니어서 분위기를 가늠하기 어려우나 김영욱이사장님이 몸소 애정으로 이끌어 가는 모습을 지켜보니 아름답더라고요. 이사진들을 포함한 많은 임원진이 헌신적으로 일하는 모습도 보고 좋고요. 다만, 조직이 오랫동안 큰 변화 없이 오늘에 이르다 보니 회원들이 협회에 대한 열정이 전보다 낮아진 것 같아서 아쉽습니다. 협회가 건강하게 발전하려면 젊은 회원들의 참여율이 높아야 하잖아요? 신·구세대의 보이지 않는 거리를 어떻게 좁힐지가 우리 협회의 숙제이지 않나 싶어요. 내부가 결집되면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모색 하는데 도움이 되겠죠.

후배들에게 한 말씀 해주신다면?

⇨ “우물 안의 개구리는 되지 말자.”입니다. 세상에는 현명한 자와 아둔한 자가 공존하는데 혼자말로 “내가 최고야.”보다는 주변 공연장 선·후배와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고, 정보와 지식을 공유하면서 서로가 내공을 업그레이드 하는 현자가 되어야 하지 않나 생각해요. 제발 혼자 거울보고 자신을 평가하며 혼자만의 틀에 갇히지 말고 틀 밖으로 나와서 몇 걸음만 걸으면 훌륭한 분들이 많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배움의 가치는 끝이 없습니다.

마지막으로 끝인사 부탁드립니다.

⇨ 저는 이제 12월 정년을 앞두고 있지만, 또 다른 사회로 첫발을 내딛기 위한 준비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제게 주어진 삶을 피해가지 않고 긴장 속에서 열심히 살아가겠습니다.

지난날이 제게는 선배님, 후배님들 덕분에 소중하고 너무나 아름다운 날이었고, 행복한 날이었다는 것을 나이의 숫자가 늘어나니 더더욱 느껴집니다.

그 전에도 고마웠고, 지금은 더 “감사합니다.” 건강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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