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이 필요해

중세 유럽에서 책은 주로 수도원에서 만들었다. 수사들의 일부는 책 만드는 기술과 필사를 위한 훈련을 받았고, 그로 인해 종교에 관한 서적 외에도 역사와 과학 등을 망라한 책들이 수도원으로 모이게 되었다. 지금으로 보면 수도원이 출판사이고, 인쇄소이면서 도서관이었던 것이다. 천주교는 이 수도원의 책을 적절히 관리함으로써 권력을 축적하는 것이 용이하였다. 누군가 기록을 보고 싶거나 알고 싶은 지식이 필요하면 수도원의 허락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1500년대에 와서 천주교는 오랫동안 누려온 권력의 부작용으로 부패하여 종교혁명을 불러오게 되었고, 권력은 존재가 위태롭게 되었다. 종교혁명이 일어난 것이 천주교가 종교적 사명을 버리고 부패하게 된 것 때문이었다면, 그 즈음 구텐베르크가 인쇄술을 발명하고 그로 인해 대중들이 책을 쉽게 접하게 됨으로써 교회가 부패하다는 것을 많은 사람들이 알게 된 것이 동기가 되었다. 더 이상 수도원의 책이 권력을 생산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옛 소련이 망한 것은 경제 문제에서 비롯되었다. 굳게 닫힌 동토의 빗장을 열어젖힌 고르바초프는 침체된 경제의 원인이 무엇인지를 깨달은 지식인 이었다. 공산당은 일당 체제로 수직적인 정보전달 시스템을 갖고 있다. 이런 수직적인 정보전달 시스템에서는 정보의 양도 제한적일 수밖에 없지만 왜곡되기 쉽다. 하층에서 공산당으로 보고되는 내용들은 문책을 피하기 위한 목적 등의 이유로 거짓되거나 과장되기 일쑤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태에서는 국민들이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 길이 없었거나 잘못 알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반면에 자유경쟁 체제에서는 정보전달이 수평적이기 때문에 다양한 경로를 통해서 전달이 되고 그 양도 감당하기 힘들 만큼 많다. 많은 정보량을 유효적절하게 처리하고 판단하려면 도구가 있어야 한다. 그래서 일반화 된 것이 컴퓨터 이다. 컴퓨터는 사람들이 의사소통하는 방법을 바꿔놓았다. 공산당처럼 비밀정치를 하려고 해도 컴퓨터가 대중화 되고 부터는 불가능하게 된 것이다. 동양의 한 구석인 서울에서 워싱턴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거의 실시간으로 전달 받는 세상이다. 아무리 민중의 귀를 막고 눈을 감겨도 들리고 보이는 것을 어찌하랴. 이러한 소통방식은 정치 판도만 바꾼 것이 아니다. 경제력을 생산하는 방식도 바꿔 놓은 것이다. 유물론에만 집착하던 사회주의자 고르바초프도 비 유물적인 방식이 세계경제를 바꾸고 있는 것을 보게 된 것이다. 오늘날의 국가 경제력은 정보처리 능력에서 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결국 소련은 공산당 체제가 경제를 생산하기에 비효율적이었기 때문에 망하게 되었다라고 한다면, 정보의 다양성에 대한 인식부족이 씨앗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구텐베르크의 인쇄술이나 현대의 컴퓨터가 사회에 충격을 준 것은 그로인해 생산되고 유통되는 정보량, 즉 지식이었던 것이다. 권력은 지식에서 나온다. 우리가 혐오해 마지않는 ‘학벌’도 따지고 보면 지식을 가늠할 수 있는 척도가 되기 때문에 대접받는 것이다. 사람이 힘을 가지려면 지식, 경제, 건강 세 가지가 필요하다고 판단된다. 국가도 마찬가지다. 지식(정보), 경제, 군사력이 국력의 기준이 된다. 셋 중에 하나만 빠져도 강대국이라고 할 수 없듯이 개인도 뭔가 부족한 인간이 되는 것이다.

그래도 셋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지식이라고 생각한다. 지식이 경제력을 생산하기 때문이다.


박 영 철

GS칼텍스 예울마루 극장운영팀장
전) (사)무대음향협회 제4회 회장 역임
전) LG아트센터 총괄국장
전) 서울예술의전당 음향감독
전) 세종문화회관 음향감독
저서: 무대음향개론, 무대음향설비,공연장건축설계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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