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센터인천 이복행 음향감독



무대에 흘러가는 것들을 보는 게
지금도 너무 재밌어요.
끝까지 현장에 남고 싶어요.
아트센터인천 콘서트홀의 미디어파사드 외관
(사진 제공: 아트센터인천)
아트센터인천 다목적홀
(사진 제공: 아트센터인천)
아트센터인천 콘서트홀 로비 전경

Prologue

인천의 소극장 돌체에서 무대에 첫발을 디딘 청년이 있었다. 찰나의 소리로 관객의 마음을 움직이는 일, 그 울림 하나를 위해 평생을 무대에 바쳐온 사람의 존재감은 깊고도 묵직하다.

인천문화예술회관에서 30년간 묵묵히 자리를 지켜온 이복행감독. 그는 깊은 관록이 쌓인 후에도 안주하기보다 경험해보지못했던 환경과 소리를 좇아 아트센터인천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선배로서 후배들에게 또다른 가능성을 보여주고자 했던 그의 선택은 도전 그 자체였다.

연주자의 땀방울을 누구보다 먼저 읽어내고, 여전히 현장에 있을 때 가장 가슴이 뛴다는 사람. 끝까지 현장에 남아 음향을 하고 싶다는 그의 깊은 진심과 그 뜨거운 여정을 따라가 본다.


안녕하세요 감독님! 반갑습니다. (사)무대음향협회협회지 SSM입니다. 독자분들께 본인 소개 부탁드립니다.

저는 아트센터인천에서 음향 총 감독을 맡고 있는 이복행이라고 합니다. 인천문화예술회관에서 근 30년 일하다가 최근에 이곳으로 이직을 해 근무를 하고 있습니다.

인천문화예술회관에서 30년을 근무하시던 중에 어떻게 아트센터인천으로 오시게 됐는지 궁금한데요.

일전에 예술회관과 아트센터 두 곳 모두에서 공연을 해본 단체로부터 두 곳의 소리가 너무 다르다고 하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어요. 물론 아트센터는 클래식 전용홀이고, 예술회관은 다목적홀이지만 음향 반사판을 치고 연주를 하는데도 소리가 그렇게 다른가 하는 호기심이 커지던 찰나에, 운 좋게 자리가 나서 지원하고 합격을 해 들어오게 됐습니다.

그리고 우선적으로 음향감독으로서 조그마한 다목적 공연장부터 시작해 전용 홀까지 오는 그 길을 누군가는 한번 걸어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계기로 여기 아트센터인천으로 오게 됐습니다. 인천에서는 아무도 걸어보지 않았던 길인데, 그래도 내가 선배로서 한번 도전을 해보면, 내가 행여나 여기서 그만두게 되더라도 이후에 다른 후배들도 저와 같은 성장을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요.


아트센터 인천 콘서트홀 무대 전경

아트센터 인천 콘서트홀 객석 전경

60세의 연세에도 새로운 도전을 한다는 게 정말 멋지십니다. 실제로 직접 들어보신 이곳의 소리는 어땠나요?

완전 신세계였어요. 얼마 전에는 합창단과 교향악단이 함께 공연을 했었는데 그날 1층에서도 들어보고 2층에서도, 3층에서도 들어봤거든요. 제가 내추럴한 사운드를 굉장히 좋아하는데, 너무 자연스러운 소리가 가슴에 와서 딱 꽂히는데, 희열이! 와, 이런 거구나. 왜 전용홀이 필요한지를 바로 알 정도였으니까요. 관객으로서 공연을 봤을 때 가슴이 뭉클하다 하는 게 어떤 건지 느껴졌어요. 말년에 너무나 좋은 기회를 주셔서 정말 감사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소극장 돌체에서, 연극 ‘총각파티’.
첫 줄 오른쪽에서 세 번째 인물이 젊은 시절의 배우 이복행이다.
연극 ‘투코! 투코!’ 공연 후의 사진.
가장 왼쪽에서 이복행 감독이 만족스럽게 웃고 있다.
1994년 5월, 인천문화예술회관 소극장에서 공연한 연극 ‘탈의 소리’의 스태프 크레딧
1998년 11월 순천문화회관에서 대한민국연극제 인천 대표로 올라간 연극 ‘데이 신따이’의 스태프 크레딧. 이 역시 이복행 감독이 음향감독으로 참여했다.

정말 존경스럽고, 축하드립니다. 처음으로 돌아가 볼까요. 음향은 어떻게 시작하시게 되었나요?

제가 처음엔 극단에서 연극을 했었어요. 원래 연극 처음 하시는 분들은 배우뿐만이 아니라 조명하고 음향, 무대감독까지 이것저것 다 하잖아요. 그러면서 저도 음향을 만져보게 됐어요. 그렇게 극단 생활을 하다가, 아동극 전용 사설 극장에서 음향을 뽑으니 오라고 선배님한테 연락을 받은 거예요. 극단 선배들이 저를 좋게 봐주셔서 선배들 연이 있던 극장 감독님께 저를 추천해주셨던 것 같아요. 그렇게 정식으로 음향 일을 시작해서 2년 정도 하다가 인천수봉문화회관이라는 곳으로 옮기게 됐죠. 수봉에서 한 6년 있었는데 음향을 본격적으로 한 건 그때부터였어요.


수봉문화회관에서 본격적으로 음향을 하시면서 추억이 많으실 것 같은데요. 기억에 남는 일화를 들려주실 수 있으신가요?


인천시립극단 창단 초창기 때 밤을 새면서 공연 준비했던 게 기억에 남네요. 연출 이승규선생님이랑 무대미술 이태섭 선생님이 계시던 때였어요. 세트부터 자체 제작 들어가면서 제가 음향 오퍼레이팅을 했었는데, 작품도 재밌고 과정 하나하나가 다 너무 신기해서 밤을 새도 피곤하지가 않았어요. 신기하고 재밌으니까 이것저것 계속 해보고 작업하다가 세트에서 잠들기도 하면서 공연을 만들었던 기억들이 강렬해요.


수봉문화회관에서 6년 근무 후 인천문화예술회관
으로 오셨습니다. 그 계기도 궁금한데요.
수봉문화회관이 92년도에 오픈했는데, 시설은 작아도
거기서 연극, 무용 등등 다양한 공연을 많이 했었어요.
그런데 예술회관이 생기고 나니까 대부분의 공연들이 그쪽
으로 가는 거예요. 전에는 이것저것 많은 공연을 했는데
공연 대관이 많이 줄어서 아쉬움이 컸죠. 젊을 때는 이것
도 해보고 싶고 저것도 해보고 싶은 호기심이 누구나 있잖
아요. 그래서 당시에는 예술회관에서 좋은 공연들을 다양
하게 많이 하니까, 1차적으로 가서 공연을 보고 싶다 하는
호기심이 강했어요. 당시에 예술회관 음향감독 자리가
공석이었는데 마침 저에게 연락이 와서 시에 가서 면접 보고
별정직 공무원으로 예술회관에 출근하게 됐어요. 너무운이 좋은 케이스였죠. 그게 97년도였어요.

극장 규모와 시스템, 기술 등이 이전과는 많이 달랐을텐데 어떻게 적응을 하셨나요?

맞아요. 극장 규모도 그렇고 시스템 자체가 완전히 달라지니까 사실은 막막했는데 먼저 근무하셨던 황인청 감독님께 교육을 받으면서 바로 공연에 투입됐죠. 그분이 아니었다면 시스템 파악도 못 했을 거예요. 그렇게 초창기에 공부를 열심히 했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지금까지도 그게 아주 큰 도움이 된 것 같아요. 그렇게 알음알음 물어보고 필요하면 책도 사서 보면서 현장에서 스스로 찾아냈어요.

호기심을 가지셨던 만큼 예술회관에서 많은 공연을 하고 또 보셨을텐데요. 가장 기억에 남는 공연이 있다면 말씀해주세요.

시립극단 이성열 연출님의 ‘화염’이라는 작품을 했었는데 무대 사용이 좀 특이했어요. 타 공연장에서 했던 공연인데 무대에다가 객석을 세우고 무대 커튼을 닫아서 무대 안에서 극 진행과 관객 관람이 다 이뤄졌어요. 무대에 스피커리깅도 해야하고, 극 진행하면서 커튼이 열렸을 때 프론트필이라든지 서라운드, LCR 시스템의 활용을 많이 고민했었는데, 그때의 작업이 가장 기억에 남네요. 객석의 메인을 쓰지 못하니 무대 위에 스피커 리깅하면서 소리 들어보고, 또 극에 어울리는 이펙트나 음악을 찾아 적용해보며 재밌었던 기억이 나요. 또 한 가지는, 시립무용단이랑 남미 공연에 갔을 때인데, 마지막 커튼콜 때 연주자들이 아리랑 연주를 했어요. 그러니까 객석 사람들이 모두 감동을 받아 자리에서 일어나는 걸 FOH에서 보는데, 그때 뭉클하던 감정은 지금도 못 잊어요.

현재 아트센터인천의 조직 구성은 어떻게 되어 있나요?

아트센터인천은 2018년도 개관 이래 경제자유구역청에서 운영을 하고 있고, 시설관리팀, 운영팀, 공연기획팀 등으로 구성돼 있습니다.

콘서트홀의 서스펜션 마이크 중 일부

현재 무대에 서스펜션 마이크가 설치되어 있습니다. 어떤 포맷으로 되어 있나요?

지금 서스펜션 마이크는 16개가 설치가 돼 있는데 기본적으로 개별 포인트 조절이 모두 가능해요. 간단하게 1열에는 현 파트용으로 4개, 2열에는 목관 자리 4개, 3열에는 타악·금관 자리에 2개있고, 그 다음 4열의 합창석쪽으로 4개, 마지막으로 객석에 2개의 마이크가 설치 돼 있습니다. 사실 이런 클래식 전용 홀은 확성 개념이 거의 없는데 요즘 공연이 워낙 다양하게 이뤄지다 보니 마이크를 쓰는 공연이 많아졌어요. 홀 어쿠스틱 자체는 너무 좋지만 그런 현장 상황에 대비해서 흡음이나 잔향에 대한 제어를 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게 또다른 고민거리예요. 센터에 L-Acoustics KARA가 12통이 있는데, 1~3층을 모두 커버하고 앰프 하나당 4통씩 매칭돼 있어요. 공연마다 객석 상황을 봐서 3층 관객이 없으면 저희가 가장 위쪽 스피커는 뮤트 시키는데, 그러면 반사되는 게 그나마 적어지니까 사운드가 훨씬 괜찮아지더라고요. 이렇게 나름의 방편을 찾으면서 운영을 하고 있어요.

이외에도 운영하시면서 느낀 개선점이 있을까요?

저희는 현재 빔 프로젝터와 스크린을 사용하는데, 그걸 LED로 바꾸면 어떨까 하는 고민도 들어요. 그게 요즘 추세이기도 하고, 전에 LED를 활용한 국립합창단 공연을 봤는데 너무 멋있는 거예요. 만약 설치한다면 홀 사운드 체크를 해야겠지만, 스크린 대신 LED를 설치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은 있어요.또 한 가지는 무대의 스피커나 카메라가 너무 노출이 돼있는 것 아닌가 싶어요. 공연할 때 연주자에게 집중했으면 좋겠는데 무대 벽면을 따라 있는 저 기기들이 살짝 시선을 뺏기도 하는 게 안타까워서 그런 부분은 좀 개선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있어요.


콘서트홀의 조정실 전경. FOH와 동일한 Midas Pro X 콘솔을 두고있다. 메인홀과 FOH의 모습은 이어지는
기사 ‘아트센터인천방문기’에서 볼 수 있다.

콘서트홀의 전체 영상을 컨트롤하는 장비 데스크.

무대 및 FOH와의 연결을 위한 패치 랙.

감독님의 일생을 돌아보면서 연극 얘기를 하지 않을 수가 없는데요. 처음 연극은 어떻게 시작하게 되셨나요?

연극을 처음 시작한 게 80년대 초인데 처음엔 연극을 하려고 했던 게 아니예요. ‘나도 텔레비전 나오는 탤런트가 되고 싶다’ 생각하는 어린 학생 때였고, 알고 지내던 성우누나한테 이 얘기를 하니 인천에 소극장 돌체라는 곳이 있는데 거기 내 소개로 왔다면서 인사를 가라고 해줬어요. 그래서 가서 “안녕하세요. 누구누구 소개로 왔습니다.”했는데, 대꾸도 안 해요. 보통 같았으면 ‘뭐 이런 데가 다 있지’ 하면서 집으로 갔을 거예요. 그런데 저는 그냥 멀뚱멀뚱 있다가 연극 연습하는 거 보고 나왔어요. 다음 날 또 가서 인사했어요. 한 열흘 동안을 가서 아무것도 안 하고 “안녕하세요” 인사만 했죠. 그러다 “너 가서 저기 화장실 청소나 해라” 하면서 그때부터 극단 생활을 시작하게 됐어요. 나중에 선배님들이 말씀하시기를 저의 인내심을 테스트 해보려 했다고 하더라고요. 왜냐하면 연극 한다고 왔는데 화장실 청소만 시키니 못 버티고 나가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고, 연극이라는 게 워낙 힘든 길이었으니까요.

극단에서의 첫 작품은 어떤 작품이었나요?

첫 작품은 고등학교 3학년 때 이강백 선생님의‘수업료를 돌려주세요’라는 작품이었어요. 고3이면 보통 공부를 해야 될 텐데, 교과서가 아닌 대본을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봤어요. 맨날 대본만 보니까 툭 치면 자동으로 대사가 주루룩 나왔죠. 덜컥 주인공을 맡게 됐는데, 당시에는 너무 긴장이 되니까 잘했다 못했다 개념도 없이 어떻게 했는지 생각도 안 날 정도였어요. 그렇게 공연 끝내고는 한번 된통 크게 혼나고 나서 그걸 계기로 본격적으로 극단 생활에 전념했어요. 아침에 가자마자 화장실 청소하고, 선배님들 온갖 시중 다 들고, 저녁 연습 땐 무대 만들고 조명 하고 음향 하고. 힘들었지만 너무 재밌었어요.

극단 생활을 하시면서 만나신 분과 결혼하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감독님의 연애 스토리도 궁금한데요.

와이프와는 96년도에 전국 연극제를 같이 하면서‘낙화암’이라는 작품에 와이프는 배우로, 저는 스탭으로 같이 하는 등 계속 마주친 시간들이 있었죠. 그 후에 와이프가 종종 문자를 했는데, 사실은 그게 아주 사적인 연락이 아닌 선배님들께 안부 묻듯이 일률적으로 하는 메시지였었던 걸 저는 ‘나한테 호감이 있나’ 오해를 해버린 거예요. 가서 얘기를 했죠. “만납시다” 그랬더니 “됐어요” 하는 거예요(웃음). 직원에게 상담했죠. 어떻게 해야 되냐고 물어봤더니 그냥 평상시대로 편하게 하라 그래서 ‘그냥 영화나 한편 봅시다’ 하면서 만나고, 와이프가 연습할 때 그 극장 앞에 가 책 읽으면서 기다렸다가 끝나면 데려다주고. 그렇게 한 1년 반 정도를 제가 기다렸던 것 같아요. 이 친구도 계속 보다 보니 결국엔 마음을 열어주더라고요. 그렇게 만나서 2002년에 결혼하게 됐어요. 사실은 와이프가 거의 아버지처럼 생각하는 분이 극단 십년후의 최원영 대표님인데, 대표님이 “저 친구 좋아 괜찮아” 계속 말씀해주시니까 그 얘기에 신뢰를 얻은 것도 있는 것 같아요.

협회 가입은 언제 하셨습니까?

98년쯤에 가입을 했어요. 황인청 감독님 추천으로 협회를 알게 됐어요. 그때는 소리회라는 이름으로 있었고 회원도 많지 않다 보니 지금처럼 기술 교류보다는 친목 도모의 성격으로 모임을 가졌죠. 그렇게 98년도에 들어와서 계속 지금까지 활동을 하고 있네요.

아주 초창기 멤버시네요. 오랜 시간 협회 활동을 하시면서 좋았던 기억이 있다면.

저는 외부 공연으로 지방도 많이 다녔는데, 협회 소속의 다른 지역 감독님들께 도움을 많이 받았어요.“감독님, 저 이번에 무슨 공연 있어서 갑니다.” 그러면“어서 와!” 해주시고. 선배님들도 후배님들도 “제가 어떤 걸 가져갈 거고 이런 걸 써도 될까요?” 하면 흔쾌히 “쓰세요.” 해주시는 게 너무 감사했어요. 지금도 마찬가지로 도움을 많이 받고 있어서 내가 정말 복 받았다는 생각도 많이 해요. 그리고 요즘엔 기술적인 교류가 많아지면서 세미나 등 여러 활동을 통해 젊은 후배들을 보면 이들이 갖고있는 기술적인 노하우들이 너무 좋아요. 그걸 보면서 저도 자극을 많이 받고 많이 배우고 있습니다.

초창기 선배로서 협회에 바라는 것이 있다면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젊은 친구들은 끊임없이 만나서 대화를 하고 교류를 했으면 좋겠고, 협회는 이거에 대해 충분한 지원을 해줬으면 좋겠어요. 저는 네트워크 형성이 매우 중요하다 생각하거든요. 젊은 친구들끼리 모여서 해보고 싶은 것들이 있을 텐데 그게 음향 기술적인 것이든 아니면 사람 간의 관계, 소모임에 관한 것이든, 협회에서 후배들이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도록 여러 방면으로 지원해줬으면 좋겠어요.
또 한 가지 개인적으로 갖고 있던 생각은, 많은 후배들이 장비 전시회를 보러 가잖아요. 그것도 중요하지만 공연을 보여주고 스테이지 투어를 하고 음향엔지니어들과 대화의 시간을 갖는 것도 좋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해요. 장비들이야 관심만 있으면 홈페이지에서 다 볼 수가 있잖아요. 다양한 공연을 보고, 또 여러 극장의 시스템을 보고 배워서 서로 공유하도록 협회에서 프로그램 식으로 지원해주면 이걸 통해서 또다른 좋은 발전의 장이 만들어지지 않을까하는 바람이 있어요.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한마디가 있으시다면.

하고 싶은 말은 딱 한 가지예요. 공연 많이 보세요. 다양한 장르의 공연을 보고, 무대에서 저들이 하는 행동들을 머릿속에 기록하세요. 그들이 어떻게 연주하고 움직이는지 알고, 기억을 하고, 느끼고, 교감하는 게 있어야 공연이 살아난다고 말해주고 싶어요. 그리고 무대에서는 프로-아마추어 구분이 없어요. 무대에 서는 그 자체로서 우리는 그분들을 존중하고 존경해야 된다고 생각을 해요. 연주자든 무용수든 배우든, 이분들은 그 무대에 서기까지 몇 개월을 고생을 했을 거잖아요. 이분들의 노력을 우리가 함부로 평가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해요. 서로 존중하고 교감을 하면 작품 사운드에도 굉장히 좋은 에너지가 될 거예요.

앞으로 감독님의 목표는 무엇인가요?

제가 정말 해보고 싶은 게 있는데, 연습실에도 가변 잔향 시스템을 도입해보고 싶어요. 만약 어떤 상주단체가 외부 어느 공연장에서 공연을 해야 하는데 그 홀의 잔향이 2초라면, 여기 연습실에서 연습할 때 그 홀에 맞춰서 잔향을 바꾸고 연습을 할 수 있도록. 연주자들이 최상의 컨디션으로 연습하고 무대에 설 수 있도록 우리가 뒷받침을 해주고 싶어서 전에 한번 그런 제안을 했었어요. 결국에는 안 됐지만 그래도 언젠가는 환경을 만들어보고 싶다는 계획이 있어요. 그리고 제 가장 큰 욕심은 계속 현장에 남아 있고 싶다는 거예요. 사실 어느 정도 나이가 되면 사무실에서 사무를 보게 되는 것 같은데 전 그게 싫어요. 현장이 너무 재미있으니까. 물론 긴장감도 있지만 무대에 흘러가는 것들을 보는 게 지금도 너무 재밌어요. 끝까지 현장에 남고 싶어요.

SSM을 보고 계신 여러 선후배, 동료분들께 마지막으로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현장의 감독님들, 가족들과의 시간을 조금 포기하고서라도 주말 밤낮 구분 없이 극장에서 많은 시간과 세월을 보내고 계시잖아요. 이렇게 현장에 계신 우리 감독님들, 저는 너무 좋아하고 너무 존경합니다. 그리고, 많은 대화를 하고 많은 교류를 합시다. 그렇게 네트워킹이 형성이 되어야 공연장도 우리 협회도 더 단단해질 겁니다. 그런 단단함을 함께 구축해나가고 싶습니다.

Epilogue

인천 공연예술의 역사를 함께 걸어온 이복행 감독과의 대화는, 단순한 엔지니어의 세월을 넘어 한 예술인의 깊은 헌신을 들여다보는 시간이었다. 무대 위 아티스트들이 흘린 수많은 땀방울을 누구보다 깊이 이해하기에, 그는 단순한 오퍼레이팅을 넘어 그들의 노력을 온전히 보듬고 세밀하게 교감하고자 노력한다. 타 공연장의 환경에 맞춰 연습할 수 있도록 연습실에 가변 잔향 시스템을 도입하고 싶다는 바람 역시, 연주자들이 최선의 컨디션으로 무대에 서길 바라는 깊은 애정에서 비롯된 고민이다.
또한, 자신이 먼저 걸어간 길이 후배들에게 든든한 이정표가 되길 바라는 그의 시선은 늘 사람을 향해 있다. 서로의 이야기를 허물없이 나눌 교류의 장을 바라는 그의 목소리에는 사람과 사람을 잇고자 하는 그의 따뜻한 진심이 묻어난다. 수많은 밤을 무대 뒤에서 밤새워 보내면서도 “현장이 너무 재미있어 끝까지 남고 싶다”며 미소 짓는 그에게서, 기술을 넘어 무대를 사랑하는 한 예술가의 모습을 읽는다.
소리에 진심을 실어 보낸 그의 뜨거운 여정은 여전히 마침표를 찍지 않았다. 그의 청춘은 지금, 아트센터인천에서 가장 아름답고 울림 있는 사운드로 현재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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