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의 메카 대학로의 중심 아르코 예술극장에서 처음과 끝을 함께하다

공연의 메카 대학로의 중심
아르코예술극장에서
처음과 끝을 함께하다

도 명 호 아르코·대학로예술극장 음향감독, 전)무대음향협회 이사장

1990년 88서울예술단에서 첫 음향감독을 시작으로 1993년 (구)문예회관, 지금의 아르코 대학로예술극장에서 함께한 지 어느덧 30년이다.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음향감독을 하면서 후회한 적이 없고, 정말 만족하면서 이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에 대해 감사하게 생각한다.”라고 할 정도라니…. 이 일에 대한 애정이 느껴지지 않는가? 이번 스페셜 인터뷰를 통해 (사)무대음향협회 2기 이사장로서 협회와 회원들을 위해 보냈던 시간과 함께 음향감독으로서 33년의 시간을 추억해 본다.

취재 | 성재훈, 윤보라
자료정리 | 윤보라

본인 소개 부탁드립니다.

⇨ 안녕하십니까? 저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 운영하는 아르코예술극장에서 음향을 담당하고 있는 도명호라고 합니다.

처음 음향 관련 일은 어떤 분야로 시작하셨나요?

⇨ 1990년에 한국방송광고공사에서 운영하는 88서울예술단에 입사하여 처음으로 공연예술계에 입문하였습니다. 그곳에서 3년정도 근무하다가 1993년 3월 1일에 아르코예술극장((구) 문예회관)으로 오게 되었죠. 공연장은 아르코예술극장이 처음입니다.

음향이라는 한 분야에만 집중하다보니 벌써 33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네요.

그때 당시 무대 음향을 배울 수 있는 환경이 열악하지 않았나요?

⇨ 그랬죠. 음향 전문서적도 많이 없었고, 기초적인 자료도 많이 없었어요. 그리고 88서울예술단에 음향 담당 관련 전문가가 없었고, 채용 공고가 나면서 제가 첫 음향감독으로 입사했기 때문에 선배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초반에 정말 힘들었죠. 실제 공연을 진행하면서 혼자 터득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88서울예술단은 어떤 예술단인지 궁금합니다.

⇨ 88서울예술단은 전통춤·노래·연기·사물놀이 등 예술적 기량을 가진 뮤지컬단원과 무용단원들이 소속해있는 종합예술단체입니다. 처음 입사할 당시 이렇게 규모가 큰 예술단인지 모르고 있었기 때문에 꽤 힘들었죠.^^

3년동안 근무하면서 바쁘게 지내셨을 것 같습니다.

⇨ 그때 당시 제가 스물여섯이었는데, 뮤지컬 작품은 정말 원 없이 해본 것 같습니다. 상반기, 하반기에 정기적으로 호남, 경상도, 강원도 지방 투어를 하면 한 20일씩 다녔어요. 지방 투어가 끝나면 무용, 사물놀이, 연극까지 다양한 장르의 공연을 진행하면서 정신없이 바쁘게 지냈습니다.

기억에 남는 일이 있다면?

⇨ 88서울예술단에서 첫 작품이었던 ‘한강은 흐른다’라는 뮤지컬도 생각나고, 기억에 남는 일이 하나 떠오르는데요. 1993년 2월 서울예술의전당 오페라하우스에서 대통령 축하 행사로 뮤지컬을 진행했던 적이 있어요. 오케스트라피트에 MBC 관현악단을 위한 마이크를 설치했는데, 실제로는 제가 릴녹음기 2대(MR 릴테이프 2개)를 가지고 오케스트라피트에서 플레이를 했습니다. 관현악단 연주는 페이크였고, MR공연이었던거죠. 릴데크 안에 인, 아웃볼륨이 있었기 때문에 볼륨 조절은 가능했지만, MR 릴테이프의 텀으로 인해 지휘자 선생님의 지휘와 MR플레이 큐가 맞지 않아서 힘들었습니다.

3년이라는 시간이 흐르고, 아르코예술극장으로 어떻게 오게 되셨나요?

⇨ 제 운명인가 싶어요. 한국문화예술진흥원에서 근무하시다가 서울예술단 국장님으로 발령받아서 오신 분이 공연장에서 근무하는 것을 추천해주셨어요. 이렇게 인연이 되어 지금까지 아르코예술극장에서 함께하고 있습니다.

그때 당시 팀 분위기는 어땠는지 궁금합니다.

⇨ 음향팀, 무대팀, 조명팀 모두 가족같이 정이 넘치고, 함께 잘 지냈습니다. 그때 당시 음향팀 4명, 무대팀 6~7명, 조명팀 7명이었는데 네 일, 내 일 가리지 않고 서로 협력하며 일할만큼 분위기가 좋았습니다.

음향팀 같은 경우 대극장, 소극장 2개 극장에 4명이 같이 근무했는데, 360일정도 공연이 있었기 때문에 정신없이 바쁘게 지냈던 것 같아요.

예술단에서 근무할 때와 공연장에서 근무할 때를 비교해보면 어떤 점이 다른가요?

⇨ 예술단 같은 경우에는 주로 소공연장보다는 대공연장 투어를 많이 하다보니까 개인적으로 시야가 넓어졌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대한민국의 많은 예술가들을 접할 수 있는 기회와 전국 공연장 감독들과 새로운 관계를 형성할 수 있었고요. 저에게는 좋은 경험을 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습니다.

공연장 같은 경우에는 팀원들과 업무 분담이 가능해서 예술단에 있을 때보다는 조금 여유로워졌고, 가정에 신경 쓸 수 있는 시간 또한 많아졌습니다.

그러면 예술단에서 한창 바쁘실 시기에 가정을 이루셨네요.

⇨ 1992년 2월이니까 그러네요. 스물세 살에 아내를 만나서 연애하다가 예술단에 근무할 때 결혼을 했어요. 지방 투어를 많이 다니다보니까 아이들이 저를 알아보지 못할 때도 있더라고요. 그런 시절이 또 있었습니다. ^^

아르코예술극장은 대한민국 공연의 메카 대학로 중심에서 공공 공연장으로서 큰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1980년대 민중 연극부터 시작해서 대한민국 연극 발전에 하나의 기틀을 마련해 준 장소이기도 했는데요.

⇨ 사실 저는 1990년에 88서울예술단에 입사하면서 공연예술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아르코예술극장이 대한민국 공연의 메카, 그중에서도 무용과 연극의 메카라는 이야기는 선배들의 이야기를 통해 알게 되었죠. “왜 그럴까?” 곰곰이 생각해보니 예술가들은 점점 늘어나는데 예술가들이 공연할 수 있는 공간은 많지 않아서 그랬던 것 같아요. 그래서 무용뿐만 아니라 연극하는 예술인들까지 모두 아르코예술극장을 선호했고, 기대감 또한 컸다고 하더라고요. 그때 당시 제가 봤던 예술가들의 열정은 정말 대단했습니다. 저 또한, “우리 공연장의 자부심에 부응하는 음향감독이 되어야겠다.” 생각했고, 힘든 지도 모른 채 열심히 했죠. 잘하지 못해도 제가 할 수 있는 건 다 했던 것 같아요.

30년을 아크로예술극장에 근무하면서 대학로의 무용수, 배우 등 예술인들부터 연출가, 스태프까지 많은 분들과 함께 하셨죠?

⇨ 그렇죠. 1990년대에 입사해서 만났던 연출가나 배우들은 세월이 많이 지나 지금은 대부분 은퇴하셨고, 세대교체가 된 것 같아요. 요즘은 연출가나 안무 디렉팅하는 예술가들을 보면 20대, 30대가 많더라고요.

제가 있는 아르코예술극장도 세대교체가 되는 시점이지 않습니까?^^ 저도 오래 근무했고, 후배들을 위해서 제가 마무리를 잘 해야 되지 않나 생각하고 있습니다.

현재 아르코·대학로예술극장 전체 인력구성은 어떻게 되어있나요?

⇨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위원장 그리고 경영전략본부, 전략사업본부, 예술창작본부, 예술확산본부, 예술인력개발원, 예술극장, 미술관 등으로 조직이 구성되어있고, 극장운영부와 무대기술부는 예술극장 소속입니다. 무대기술부는 무대팀 10명, 음향팀 6명, 조명팀 7명으로 아르코·대학로예술극장 4개 공연장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1981년 개관 후 지금까지 아크로예술극장의 음향 장비부터 무대, 객석까지 공연장 전체적으로 어떤 부분들이 변화되었는지 궁금합니다.

⇨ 일단 음향파트는 많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음향 기술이 발전하면서 풀레인지 스피커로 간소하게 운영하다가 지금의 라인어레이 스피커까지 오게 되었죠. 그리고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변화하면서 디지털 시스템 구축 리모델링도 네, 다섯 번에 걸쳐서 한 것 같아요.

초창기에는 FOH가 3층에 있었거든요. FOH를 1층으로 구축하는 작업을 하면서 힘들었던 점이 하나 있었는데요. 그 당시 임원분들이 중요하게 생각했던 부분이 음향이 아니라 객석 수였어요. 그렇다보니까 FOH 구축으로 인해 객석 수가 줄어드는 것을 이해시키는데 3, 4년 정도 걸렸던 것 같아요.^^

이러한 변화들로 인해 관객들에게도 더 나은 사운드를 들려줄 수 있게 된 것 같습니다. 앞으로 아르코예술극장에서 함께 할 후배들에게 선배로서 해 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 모든 음향 장비가 디지털화 된 지금 후배들도 같은 세대이기 때문에 연극이나 뮤지컬, 무용 등 다양한 장르를 소화할 충분한 역량을 갖추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워낙 실력들이 좋기 때문에 잘할 거라 믿고요. 다만, 자신의 생각보다는 연출가나 예술가들의 입장에서 많이 지원해주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음향시스템 같은 경우도 추후에 부족한 부분들은 같이 고민하며, 개선해 나갔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면 음향 관련 직업을 꿈꾸는 후배들에게 해 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 저는 음향감독을 하면서 후회한 적이 없고, 정말 만족하면서 이 일을 할 수 있는 것에 대해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후배들도 충분히 도전할 만한 일이고, 메리트 있는 직업이라고 생각하고요. 환경이 조금 힘들고 어렵겠지만, 그 속에서 자기가 노력한만큼 분명히 성취감이 있기 때문에 음향 관련 일을 한다는 것에 자긍심을 가지고 멋진 음향인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2018년 띠아코(TheArCo)에서의 도명호 음향감독

협회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는데요. 1993년 협회 창립부터 2018년 (사)무대음향협회 2기 이사장 역임까지 오랜 시간 협회와 함께 하셨습니다.

⇨ 제가 1993년 3월 아르코예술극장에 입사했을 당시 선배님들이 음향인들 모이는 자리가 있으니 같이 가자고 하셔서 참석하게 되었어요. 음향 관련 이야기를 나누면서 서로 친목도모도 하는 자리였는데, 아마 그 때가 협회의 첫 시작(소리회)이지 않았나 싶어요. 초반에는 서울에 있는 공연장 감독들 중심으로 모였고, 점점 지방까지 확장해 나가면서 지금의 협회가 되었죠. 저도 2기 이사장을 맡으면서 운영을 해봤지만, 쉽지 않은 부분들도 있거든요. 이렇게 발전하기까지 선배님들의 노력이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무대음향협회 2기 이사장으로 재임할 당시 무대음향 분야 발전과 회원의 권익 향상을 위해 특히 힘쓰셨던 부분은 어떤 점이었나요?

⇨ 어떤 수익적인 사업보다는 협회와 협회원들이 같이 공유하고, 참여할 수 있는 사업에 대해서 많이 고민하고 집중했었습니다. 우연치 않게 찾아온 ‘띠아코(TheArCo)’를 하게 된 계기가 “실제 협회원이 근무하고 있는 공연장에서 이루어지는 토론이나 세미나가 조금 더 현실적이고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많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거든요. 개인적으로 이런 사업을 조금 더 활성화시켰으면 어땠을까 아쉬움이 남습니다.

음향감독이라는 본업과 동시에 자기 시간을 쪼개면서 협회 일까지 한다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인 것 같습니다.

⇨ 내가 맡은 일이고, 스스로 정한 일이기 때문에 즐겁게 했습니다. 본업과 같이 하다 보니 사업 하나를 추진하기까지 쉽지 않았고, 그래서 아쉬우면서 부족한 부분도 있었지만 그 때 당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려고 했던 것 같아요.

앞으로 ()무대음향협회가 어떤 변화가 있으면 좋을지 그리고 회원들을 위해 어떤 노력을 해주면 좋을지 말씀 해 주세요.

⇨ 협회를 중심으로 후배들이 더 결집되고, 음향인들을 위해 하나의 중심 역할을 하는, 조금 더 발전한 협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서울부터 제주까지 어느 지방이든 소외되지 않게 접근성을 해결해야 하지 않나 싶어요. 서울과 지방에서 하는 사업들을 적절하게 잘 조율하면서 회원들의 참여율도 높일 수 있는 방법을 서로 고민하면서 찾아야 할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앞으로 계획이 궁금합니다.

⇨ 저도 이제 고민해야 될 나이가 되었더라고요.^^ 요즘 여러 각도로 생각하고 있는데, 쉽지 않네요. 음향이라는 한 가지 일만 하다가 또 다른 일을 하려니까 어떻게 방향을 잡고 가야할지 혼돈의 시점인 것 같아요. 혼자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은데… 쉽지 않지만 조금 더 생각해 봐야할 것 같습니다.

가끔 후배들한테 농담반 진담반으로 “캠핑장 하나 만들어서 자연에서 자유롭게 사람들과 함께 하고 싶어.”라고 이야기하는데 도시보다는 산과 가까운 쪽으로 가서 할 수 있는 일을 찾으려고 노력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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