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욱 완성도 높은 야외 오페라 이머시브 사운드 시스템 구현
지난 2022년 5월, 부산 Kiswire center 야외공연장에서 진행된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은 여러 모로 성공적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주최사인 세아운형문화재단과 문화재단 1963은 2023년 5월에 새로운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를 올리기로 했으며 다시 그 작품의 음향을 담당하게 되었다.
오랜 기간 함께 작업해온 윤상호 연출은 음향에 대해서는 전적으로 내게 일임했지만 이번에는 지난번보다 한 단계 나아간 사운드를 만들기 위해 다양한 고민을 하면서 시스템과 사운드 디자인을 구상해보았다. 사실 ‘지난해보다 더 나은’이라기보다는 ‘가장 이상적인 야외 오페라의 소리 전달 방식이란 어떤 것일까?’를 전제에 두고 고민을 시작했는데 다행히 고민 과정에서 오랫동안 협업해온 분들의 도움으로 의미도 크고 결과도 만족스러운 작품을 남길 수 있게 되었다.
이번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 에 적용한 음향 기술은 아래와 같이 요약할 수 있다.
1. 야외 오페라에 ‘이머시브 사운드’ 적용
이머시브 사운드란 관객을 중심으로 360도 방향으로 소리를 전달하는 기술로 이번 공연에는 객석을 360도로 둘러싼 25개의 스피커와 야마하 AFC 프로세서를 통해 클래식 공연장의 울림을 야외에서도 느낄 수 있도록 했다.
특히, 무대 위 와이어에 설치된 6개의 스피커를 통해 머리 위쪽에서도 공연장의 울림을 전달하여 야외의 개방감과 실내 공간의 자연스러운 울림을 함께 느낄 수 있도록 디자인했다.
또한 전면에 배치된 9개의 스피커를 통해 객석 어디에서나 무대 위의 오케스트라와 가수 위치에서 소리가 전달되도록 해 스피커를 사용하지만 마치 확성하지 않은 듯 자연스럽게 공연에 몰입되는 경험을 전달하도록 노력했다.
2. 25채널의 서라운드 효과음
공연 전후, 그리고 공연 중 새소리와 풀벌레소리, 바람소리 그리고 마차 소리 등 효과음은 25채널의 세분화된 서라운드 효과로 제작되어 마치 실제 그 장소에 있는 듯한 실제감을 느낄 수 있도록 했고 야외공연이어서 더 실제감이 느껴지는 듯했다.
3. 무대 위 가수들 위치를 자동으로 추적하는 ‘스테이지트래커(stagetracker)’ 기술 적용
무대 위 가수들의 움직임을 실시간으로 이머시브 프로세서에 반영하기 위해 TTA stagetracker를 사용하였다. 각 가수들은 초소형 추적기를 부착하였고, 이를 무대 상부에 설치된 세 개의 안테나가 그 위치를 수신해 실시간으로 위치를 반영하였다. 무대 위에서 각 가수의 움직임은 실시간으로 소리의 위치를 결정하는 프로세서로 전달되어 무대 위에서 움직임에 따라 소리의 위치도 변하게 되므로 관객들은 항상 스피커가 아닌 가수의 위치에서 소리가 전달되는 경험을 할 수 있도록 하였다.

Kiswire center 야외공연장
공연 장소인 Kiswire center 야외공연장은 고려제강 본사 내에 위치한 야외공연장이다. 300석 남짓 되는 작은 크기의 공연장이지만 공연에 방해해되는 요소가 거의 없고 무대 시야도 좋은 장소이기도 하다.
특히, 객석 주변으로 잔디밭과 공연장을 위한 구조물이 있어 서라운드 스피커를 설치할 수 있는 여유 공간으로 활용할 수 있었다. 이번에는 거기에 더해 공연장 상부를 가로지르는 와이어(우천시 공연장을 덮을 수 있는 지붕 설치를 위한)를 활용해 야외임에도 height 채널 스피커를 설치할 수 있었던 것이 이 공연장의 큰 장점이 되었다.

스피커 시스템 디자인
공연을 위한 스피커 시스템 디자인은 그림과 같은 레이아웃을 기본으로 현장 상황에 따라 약간 수정을 가했다.
스피커 수량은 많을수록 유리한 점이 있지만 결국 스피커의 숫자는 셋업의 난이도, 그리고 비용과도 직결되는 문제이기 때문에 이머시브 사운드 공연에서 스피커 시스템 디자인은 청감상 자연스러운 경험을 유지할 수 있는 범위에서 작은 숫자를 사용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그래서 정위감에 큰 영향을 끼치는 전면 스피커에 좀 더 할애하고 측면과 후면의 부담을 더는 방향으로 디자인을 하였다.
오히려 스피커 수량보다 객석을 고르게 커버할 수 있는 스피커 지향 패턴과 위치가 훨씬 중요하다는 생각이다.
오페라와 클래식 음악의 경우 대중음악에 비해 음압 레벨이 크지 않으므로 스피커도 지나치게 큰 것을 사용하지 않아도 되는데 대신 섬세하고 정확한 재생이 필요하다. 그런 점에서 이번에 전면 스피커로 사용한 Nexo P12는 140dB의 재생 음압에도 정확하고 세밀한 표현이 가능한 스피커로 매우 훌륭한 선택이었다고 판단된다.

전면스피커로 사용된 Nexo P12

측면 스피커로 사용된 Nexo PS10
측면 스피커로 사용한 제품은 Nexo PS10 시리즈였고, 후면으로는 Coda Audio의 G308을 사용했다.
상부에 사용한 스피커는 Nexo ID24였는데, 두 개의 4인치 드라이버 사이에 혼이 장착된 컴팩트 스피커로 작은 크기에도 300W의 높은 허용입력과 높은 음압을 보이고 특히 Horn의 종류에 따라 지향 패턴의 선택이 가능해 이머시브 사운드 구현시 필요에 따른 지향성 선택으로 제역할을 담당해준다. 상부에 부착한 ID24는 120° X 60°의 넓은 지향각도로 6개의 상부 스피커로 제법 넓은 객석에 상부의 잔향을 잘 전달해 주었다.
시스템 설치
음향 장비 및 설치, 현장 운영은 부산의 매직알파사운드에서 담당했는데, 매우 난이도 높은 설치 작업을 잘 마무리해준 덕분에 원하는 사운드필드를 얻을 수 있었다.


사운드 시스템 구성
믹싱 콘솔은 야마하 PM5를 사용했다. 사실, 이번 공연의 진행에는 야마하 일본 본사의 도움이 매우 컸는데, 야마하 본사 Spatial audio team에서는 프로세서와 기술 인력 지원을, 야마하뮤직코리아로부터는 PM5 콘솔을 지원 받아 사용하였다.

이머시브 사운드 프로세서로는 Yamaha AFC Image를 사용했다.
무대 라발리어 마이크와 악기 마이크들은 PM5로 입력되어 각 채널별 프로세싱을 거친 후, 각 채널의 direct out은 dante network를 통해 AFC 프로세서로 전달된다. 여기에서 각 채널의 위치에 따른 각 스피커 출력 신호를 다시 PM5 콘솔로 받아 전체 레벨 및 스피커 튜닝을 콘솔에서 진행하고 그에 따른 신호 분배까지를 담당하도록 한 것이다.
물론, 세밀한 프로세서의 위치 제어 등은 AFC4 Processor를 제어하는 PC상에서 이루어졌지만 프로세서와 콘솔의 연동 덕분에 실시간으로 위치를 이동하는 등의 조정을 콘솔 상에서 할 수 있어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었다.

이머시브 시스템 구성
이머시브 사운드의 핵심적인 요소인 이머시브 프로세서로 사용된 AFC4는 잔향가변시스템과 이머시브 사운드를 함께 제어할 수 있는 프로세서인데, 이번 공연에서는 AFC Image 이머시브 사운드 기능만을 사용하였다.
클래식 공연에서 중요한 공간감 생성은 콘솔의 리버브가 아닌 AFC에 내장된 3D reverb 기능이 담당했다. 콘볼루션 리버브를 기반으로 공간감을 제어할 수 있는 잔향을 통해 공간 사이즈에 어울리는 잔향을 디자인했고, 방향에 따른 잔향의 양을 독립적으로 제어하는 한편 각 음원에 따른 잔향의 양도 적절히 제어할 수 있어 매우 자연스러운 공간감을 재현할 수 있었다.
프로세서 내에서 스피커 시스템을 디자인하고 얼라인먼트하는 일도 매우 중요한데, 이를 통해 각 스피커의 역할이 정해지기 때문에 실제 공간상에서 얼마나 자연스러운 음원의 위치감이 전달되는가 하는 점이 이 과정에서 좌우되기 때문이다.
TTA Stagetracker는 ㈜사운드솔루션의 협조로 사용할 수 있었다.
Stagetracker는 세 개의 안테나를 사용하는데 보통의 안테나와 달리 제법 무겁고 부피도 작지 않다. 안테나를 매달고 캘리브레이션을 한 후 센서를 지니고 무대 위를 움직이면 센서의 위치 정보를 서버가 읽고 이를 이머시브 프로세서로 전달해준다.


Stagetracker 안테나 (Stagetracker RadioEye)

공연에 사용된 무선밸트팩(Shure UR1, 좌)과 배우의 위치를 실시간으로 송신하는 TTA Stagetracker Tag(우)

Stagetracker 서버

Stagetracker Controller
사운드 메이킹
이러한 기술적인 셋업과 준비 과정에는 야마하 본사에서 본 공연을 지원하기 위해 와준 Dai씨와 Hideo씨의 도움이 매우 컸다.
Yamaha Spatial Audio team에서 AFC 프로세서의 개발을 담당하고 있는 Dai씨는 AFC image의 세밀한 기능들을 협의하고 적용하는데 조언해주었고, Stagetracker를 안정적으로 운영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해주었다. Hideo씨는 건축음향 설계자이자 spatial audio 팀장으로 실제 객석의 사운드를 들으며 사운드 튜닝과 믹싱에 많은 조언을 해주었다.
공연의 사운드 메이킹에서 중요하게 생각했던 점은 단순히 공연장의 음향 환경을 그대로 옮겨놓는 것이 아닌 ‘좋은 소리’를 구현하려고 했다는 것이다.
얼핏 클래식 공연 환경을 야외에 구현한다고 하면 공연장의 소리를 그대로 옮겨놓는 것을 생각하지만 음향 시스템을 제어해서 구현할 수 있는 사운드는 그 이상일 수 있다는 생각이다. 공간의 잔향과 정위감은 모두 ‘자연스러운’ 소리 전달을 위한 조건이지 그것을 꼭 공연장의 잔향 시간과 확성하지 않은 클래식 공연장의 레벨에 맞추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Spatial Audio 팀장인 Hideo씨(우)
이러한 점에서 나와 Hideo씨는 의견의 일치를 보았고, 각 가수들의 목소리를 확성하면서 스피커의 존재감이 느껴지지 않도록 세밀하게 딜레이와 레벨을 조정해가며 음원의 위치가 가수에 머무르게 하면서도 객석에서 듣기 편안한 레벨을 유지하도록 했다. 또한 오케스트라의 사운드 이미지도 무대 뒤쪽에 위치한 오케스트라의 원래 위치를 고집하는 것이 아닌 보다 확장된 오케스트라의 폭을 적용해 좀 더 넓은 이미지를 갖게 함으로써 무대를 감싸는 듯한 사운드를 만들었다.
잔향의 경우도 공간감을 충분히 느낄 수 있는 레벨과 밀도를 디자인해 공간감과 명료도 정위감에 있어서 좀 더 와 닿을 수 있는 사운드를 구현하도록 노력했다. 그러한 점이 이머시브 사운드 시스템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얻을 수 있는 큰 장점이라 생각한다.
음향 뿐 아니라 모든 면에서 지난 ‘피가로의 결혼’보다 크게 향상되었던 작품 덕분에 내년에 또 한 번 이 자리에서 야외 오페라를 공연할 수 있게 되었다.
요즘 공연장에서도 이머시브 사운드에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고 실제 이머시브 사운드를 적용한 공연장이 점차 늘어가고 있다.
개인적으로 이머시브 사운드 구현에서 이머시브 프로세서나 스피커의 종류보다 더 중요한 것은 스피커 시스템의 디자인과 튜닝, 그리고 실제 공연에서 어떻게 운용하고 어떤 사운드를 만드는가 하는 노하우라고 생각한다.
바람은 공연장 엔지니어들과 더 많은 교류의 기회들을 갖고 협업을 통해 공연장에서 이머시브 사운드의 운영에 도움을 줄 수 있는 기회를 갖는 것이다.
이머시브 사운드의 목적은 사운드의 존재감을 뽐내는 것이 아니라 그 반대로 사운드 ‘시스템’의 존재감을 최소화하고 공연이 필요로 하는 소리가 무대로부터, 공간으로부터 자연스럽게 관객에게 전달되도록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모쪼록 현장 엔지니어들의 관심이 화려한 서라운드 효과 정도로 그치지 않고 작품에 녹아드는 사운드로 작품을 빛낼 수 있는 기회가 더 많아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 수 용
동아방송대 음향제작과 겸임부교수
음향시스템 디자이너
공연음향 엔지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