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ynamic Sound of Changes 경기시나위오케스트라 유럽 투어 2022

나는 해외 공연이 음향감독의 능력치를 최고로 테스트할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한다. 언어 소통의 어려움, 부족한 인력, 빠듯한 일정,부족한 장비와 신뢰도, 그 어떤 것 하나 녹록한 상황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어려움을 이겨내고 완벽하게 공연을 마무리하면 그 기쁨은 배가 되기도 한다.

2022년 9월, 코로나가 장기화되면서 한동안 중단되었던 해외 투어 공연에 음향감독으로 참여하게 되었다. 더구나 이번엔 20일간의 동유럽 투어 공연으로, 폴란드를 시작으로 헝가리, 슬로베니아, 오스트리아, 체코를 거치는 5개국 투어 일정이다. 해외 투어 공연을 준비하며 갖는 느낌은 항상 똑같다. 인생샷이 나올만한 핫 플레이스에 가서 사진을 찍고 로컬 푸드는 무얼 먹을까 하는, 염불보다는 잿밥에 관심 있는 그런 이미지를 그린다. 그러나 상상은 언제나 그렇듯이, 첫 공연 준비와 함께 여지 없이 깨지고 고난의 나날이 연속된다.

이번 기사에서는 투어 공연의 첫 번째와 두 번째 공연인 폴란드와 헝가리에서 진행된 공연을 리뷰해 보고자 한다.

폴란드, 제 3세계 뮤직 페스티벌의 피날레 콘서트

이번 투어 공연은 경기시나위오케스트라(전 경기도립국악관현악단)의 공연으로, 원일 예술감독을 비롯하여, 15명의 단원으로 구성된 국악 공연이다.

공연의 레퍼토리는 일반적인 국악 실내악이 아니 다. 양금과 생황이 전체 악곡 구성의 큰 역할을 차지하는 국악곡으로, 아날로그 모델링 신디사이저와 컴퓨터 시퀀서, 일렉트릭 기타 같은 전자 악기가 결합된 형태의 악단 구성이다. 악곡은 아날로그 신디사이저나 양금, 글로켄슈필, 일렉 기타 와 같은 악기가 미니멀한 리프를 만들 고, 나머지 국악기가 리프를 중심으로 변주하는 하이브리드 형태의 국악현대 음악이다.

폴란드 공연장인 바르샤바 드라마티니 극장

특히 공연의 2부 전체를 구성 하고 있는 ‘디오니소스 로봇’이라는 곡은 경기시나위오케스트라의 원일 예 술감독이 직접 작곡한 곡으로, 그리스로마 신화의 디오니소스를 주제로 한6개 악장, 40분 규모의 대곡이다. 이미 2022년 4월 통영 국제음악제에서 초연하였고, 연주단 규모를 약간 축소하여 유럽 투어 레퍼토리로 다시 한 번 진행한다.

첫 공연은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열리는 Skrzyzowanie Kultur(Cross Culture) Festival 초청 공연 이며, 우리 공연은 마지막날 피날레 공연이었다. 이 페스티벌은 아시아, 아프리카, 남미 등의 뮤지션 을 초청해 열리는 제 3세계 뮤직 페스티벌로 올해로 18회를 맞았다. 일반적인 뮤직 페스티벌과 마찬 가지로, 단독 콘서트가 아닌 환경에서 진행되다 보니, 초반부터 여러 가지 어려움이 많이 있었다. 공연은 9월 11일 19시인데 셋업은 9월 10일 21~24시, 리허설은 공연 전 1시간밖에 주어지지 않았 다. 15인조의 국악 실내악을 셋업하고 리허설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시간이다. 더구나 셋업 인원은 악기감독 1명, 무대감독 1명, 그리고 나, 이렇게 3명이다. 이런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사전에 미리 준비하고 약속한 사항이 있었다.

첫째, 국내에서 사전 연습 연주를 멀티 트랙으로 미리 녹음하여, 콘솔의 믹싱 스냅샷 데이터를 확보 하였다. 리허설 시간이 충분하지 않았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튜닝과 믹싱 시간을 줄여보고자 하는 심산이었다.

둘째, 모든 마이크를 단일 마이크 제조사의 다이내믹 마이크로 통일하였다. 악기의 섬세한 수음을 위해 콘덴서 마이크를 사용하진 않았다. 오히려 콘덴서 마이크를 사용해서 생길 수 있는 셋업, 공연 과정의 여러 가지 변수를 줄이고, 다른 악기의 누설을 최소화하고자 했다. 또한 구체적인 마이크 셋업 지시 없이도 무대감독이나 악기감독이 마이크 셋업을 손쉽게 도울 수 있도록 했다.


셋째, 컬럼형 스피커를 사이드필 모니터로 사용하여, 무대가 노출된 클래식 전용 콘서트홀에서 되도록 전체적인 미관을 해치지 않도록 했고, 많은 무대 모니터 영역을 커버하도록 했다. 메인 스피커 는 대부분 현지 공연장에서 지원되었기 때문에 컬럼형 사이드 모니터 시스템을 사용하여 클래식 전용홀에서 공연하는 경우엔 최대한 반사음을 줄일 수도 있었다.

넷째, 현지에서도 가장 구하기 편하고, 언제든지 문제가 발생했을 때 손쉽게 대체할 수 있는 범용 믹싱 콘솔을 메인 콘솔로 선택했다. MIDAS의 M32를 사전 멀티 트랙 녹음에 사용하여 콘솔의 믹싱 스냅샷 데이터를 확보했고, 투어의 메인 콘솔도 같은 콘솔을 사용했다. 이러한 상황을 예측이라 도 한듯 실제로 투어 중간에 콘솔의 먹통 현상이 발생했고, 오스트리아에서 대체 콘솔을 빠르게 수급받기도 했다.

사이드필로 사용한 컬럼형 스피커

다섯째, 공연에 사용하는 모든 마이크를 유선으로 사용해 공연 중 발생할 수 있는 무선 주파수 관련 이슈를 사전에 차단했다. 물론 전환의 어려움이나 시각적인 깔끔함 등에문제가 있었으나, 무선 시스템을 사용했을 때의 여러 가지 변수를 마주하는 것보다는 낫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이런 사전 예상은 어느 정도 들어맞아, 공연 횟수가 늘어날수록 셋업 시간은 단축되고 안전성이 확보되며 공연 진행 관련 소통이 잘 이뤄진 효과를 가져왔다.

메인 콘솔로 사용한 MDAS M32

폴란드에서 공연이 이루어진 곳은 바르샤바의 드라마티츠니 극장(Teatr Dramatyczny)으로, 600석 규모의 프로시니엄 형태 다목적 극장이다.

뮤직 페스티벌의 피날레 공연에 초청되었기 때문에, 메인 스피커는 이미 설치된 상태였다. 메인 스피커 시스템은 Meyer Sound社의 8인치 듀얼 라인어레이 스피커인 M’elodie와 600HP 서브 우퍼로 조합된 시스템이었다. 사이드 모니터 스피커는 현지 렌탈 컴퍼니에서 제공한 LD SYSTEM의 MAUI 44 G2 1조와 JBL EON ONE PRO 1조를 사용했다.

공연장은 잔향이 상당히 적은 데드한 특성의 프로시니엄 공연장이었기 때문에, 사전에 준비한 스냅 샷을 리콜했을 때의 공연 음향 청감 특성이 사전 믹싱 데이터와 비슷한 편이었으며, 섬세한 믹싱과 튜닝을 위해 많은 시간이 소요되지는 않았다.공연은 매우 순조롭게 진행됐고, 앵콜이 두 번이나 나올 정도로 관객 반응도 매우 뜨거웠다.

특히 제 3세계 음악에 대한 관객의 관람 태도가 매우 진지했고, 다른 나라의 새로운 음악에 대한 호기심과 몰입도도 매우 높았다. 이렇게 투어 일정 중 가장 힘들었던 폴란드 첫 공연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하고, 두 번째 공연지인 헝가리로 이동하였다.

경기시나위오케스트라 폴란드 공연 리허설 (출처: 헤럴드 경제)

경기시나위오케스트라 폴란드 공연 스케치 영상
https://www.facebook.com/watch/?v=1272301190255372
경기시나위오케스트라 폴란드 공연 앵콜곡 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XW5PnJ6jmfs
경기시나위오케스트라 폴란드 공연 커튼콜 영상
ttps://www.youtube.com/watch?v=W1ZxotdcE90

헝가리 공연장인 리스트음악원

헝가리, 슈박스 클래식 콘서트홀에서의 국악 공연
헝가리 공연은 부다페스트에 위치한 리스트 음악원(Franz Liszt Academy of Music) 대공연장에서 9월 13일 19시에 치뤄졌다. 리스트 음악원은 1,000석 규모의 슈박스형 클래식 전용 콘서트홀로써, 1875년에 건립된 유서 깊은 공연 장이다.

공연장 내부에는 파이프 오르간이 설치 되어 있고, 대규모 오케스트라나 교회 음악에 가장 적합한 실내 음향 특성을 가지고 있으며, 유럽 내에서도 홀 어쿠스틱 특성이 좋은 클래식 전용 콘서트홀로 정평이 나 있다.이번 투어 공연이 진행되는 공연장 중에서 헝가리 부다페스트와 오스트리아 그라즈, 비엔나의 공연장 3곳이 클래식 전용 콘서트홀이다. 공연장은 모두 2.0초 이상의 잔향 시간을 가지는 슈박스 형태의 공연장이며, 그중에서도 헝가리의 리스트 음악원은 거의 3초에 육박하는 잔향 시간을 가지고 있다.

국악 실내악이나 국악 관현악은 그동안 악기 편성이나 확성과 비확성 공연에 대한 논쟁이 끊이지 않고 존재해왔다. 악기별 음량 밸런스의 불일치로 인해 비확성 어쿠스틱 공연으로 진행할 경우에 악기군별 수량 편성에 갑론을박이 있었으며, 악곡에서 서양 현악기의 역할을 국악 현악기가 정확하게 대신하지 못하기 때문에, 신디사이저나 첼로, 콘트라베이스와 같은 악기를 국악 관현악에 끼워 연주하는 방법으로 보완하기도 했다.

이러한 문제점 때문에 현재 대부분 의 국악 관현악 공연은 악기에 일대일로 마이크를 설치하여 오디오 콘솔에서 악기별 레벨 밸런스를 조절하는 확성 공연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유럽의 전혀 다른 공연장 환경에서 국악 실내악 공연을 한다고 했을 때, 비확성 어쿠스틱 공연으로 진행할 것인가, 아니면 개별적인 악기 마이킹을 통해 확성 공연으로 진행할 것이가에 대해 많은 고민 이 있었다. 그러나 공연 레퍼토리가 순수 전통 국악기만으로 구성된 게 아니고 전자 악기, 전기 기타, 민요 가창 등으로 구성되었기 때문에 어쿠스틱 비확성에 공연으로만 진행하는 데에는 무리가 있다고 판단했고, 마이크를 사용한 확성 공연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막상 3초 정도의 잔향 시간을 가진 생소한 공연장에서 확성 공연을 하는 것은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콘솔에서 리버브를 전혀 사용하지 않아도, 확성 음향은 이미 동굴처럼 울려 퍼졌고, 연주자들은 무대 안에서 소리가 너무 울려서 모니터 스피커 레벨을 조금만 올려도 서로 악기 소리가 분간되지 않는 현상이 발생했다. 또한 타악기는 마이크를 전혀 사용하지 않고 어쿠스틱으로 진행했는데도 무대 안에서 모든 다른 악기의 소리를 마스킹해서 다른 악기의 모니터링이 되지 않는 정신 없는 상황이 되었다. 연주자들도 이런 낯선 공연환경이 처음이었기 때문에, 리허설 진행 과정에 큰 어려움이 있었다.

이러한 어려움을 극복하고자 연주자와 몇 가지 약속을 전제로 사운드 메이킹을 시도하였다.

첫째, 타악기는 전혀 마이킹을 하지 않았다. 할 필요가 전혀 없었다. 타악기를 아무리 조심스럽게 연주해도 홀 안에서 너무나 잘 들리기 때문이었다.

둘째, 타악기 연주자들에게 최대한 연주의 셈여림을 조절해달라고 요청했다. 타악기에 마이킹을 하지 않아 믹스 밸런스를 조절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기 때문에, 셈여림이 조절되지 않는 타악기 연주는 전체 음악의 믹스 밸런스를 망가뜨릴 수 있기 때문이다.

셋째, 리버브레이터를 전혀 사용하지 않았다. 이미 실내 음향에 잔향 특성이 많았기 때문에 더이상 의 리버브를 믹스하여 확성 음향의 명료도를 떨어뜨리지 않기 위함이었다. 위에 링크된 헝가리 공연 의 리허설 영상을 보면 공연장 자체의 잔향이 얼만큼인지 짐작할 수 있다.

넷째, 무대 사이드필 모니터로는 악곡의 가장 중요한 리듬 요소가 되는 악기와 상대적으로 레벨은 작지만 악곡에 있어 중요한 요소가 되는 악기만 확성했다. 전체 곡에서 가장 중요한 리듬 요소가 되는 양금, 글로켄슈필, 그리고 상대적으로 악기 음량 레벨이 작은 가야금 정도만 무대 모니터로 확성해서 여러 악기의 마스킹에 의한 모니터링의 혼잡함을 없앴다.

이러한 몇 가지 조건을 전제로 확성 음향을 최소로 유지하며 리허설을 진행한 결과, 여러 가지 청감 적 어려움이 많이 해소됐으며 연주자들도 새로운 환경에 점점 익숙해지며 공연을 준비할 수 있었다.

리스트 음악원은 클래식 전용홀이기 때문에 확성을 위한 라우드 스피커 시스템이 설치되어 있지 않 았다. 협력 렌탈 컴퍼니의 도움을 받아 메인 스피커를 추가로 설치해 사용했는데, 메인 스피커 시스템 으로 Meyer Sound社의 Constant Curvature Array Speaker인 JM-1P와 600HP 서브 우퍼로 조합 된 시스템이 제공되었다.

JM-1P는 수평 20°, 수직 60°의 방사각을 가진 스피커로 울림이 많은 콘서트홀에서 측벽 반사음을 제어하는데 약간의 효과가 있었다.

폴란드와 마찬가지로 헝가리 관객들도 새로운 동양 음악에 대해 진지한 태도로 감상을 이어갔다. 인터미션 시간에는 객석에 있던 나에게 악기나 음반 구입에 대한 질문을 하기도 하고, 무대에 설치된 가야금, 양금 등의 신기한 악기를 사진으로 찍으며 관심을 보이기도 하였다. 헝가리에서도 폴란드 와는 전혀 다른 종류의 음향적 어려움을 극복하고 무사히 공연을 마쳤다.

Meyer Sound JM-1P 시스템
리스트 음악원 내부 전경(출처: 재외포 신문)

경기시나위오케스트라 헝가리 공연 홍보 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JII7RTxN9vQ
경기시나위오케스트라 헝가리 공연 리허설 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3lAf_iCtLOw
경기시나위오케스트라 헝가리 공연 커튼콜 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kjz7aRLyLPU

마지막으로 한 가지 여담을 말하자면, 헝가리의 리스트 음악원은 일반적인 국내 공연장과는 달리 객석 중앙 맨 뒤쪽에 음향, 조명 컨트롤용 FOH 부스가 따로 마련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객석 중간의 일부 좌석을 떼어내어 음향 콘솔을 설치했다.

파티션도 설치하지 않고 바로 옆자리에 앉은 관객과 서로 눈을 마주치며 웃고, 관객들과 격리되지 않은 같은 공간에서 음향을 운영했다. 공연이 끝난 후 옆자리에 앉았던 현지 관객은 무대가 아닌 나에게 박수를 쳐주었다. 색다르고 재미있는 경험이었다.

투어 공연을 마치며

이번 공연은 공연의 난이도나 일정 면에서, 이전까지의 투어 공연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 어려움이 있었다. 특히 마지막 공연국인 체코에서는 공연 후 투어의 대미를 장식하듯 코로나에 감염되었다.

항상 투어 공연을 마치고 나면 아쉬움과 뿌듯함이 교차하지만, 이번에는 아쉬움이 좀 더 많이 남는 경우였다고 생각된다. 좀처럼 공연해보기 힘든 동유럽의 유서 깊은 콘서트홀에서 공연을 한다는 점 도 그렇고, 시간이 허락됐다면 서로 다른 공간 특성을 가진 공연장의 실내 음향 측정을 통해 국악 장르의 공연에 적합한 공연장의 건축 음향 데이터를 확보할 수도 있는 좋은 기회였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공연마다 셋업과 리허설 일정이 빠듯해서 음향 측정은 시도해보지도 못했다. 그래도국내와 완전히 다른 공연장 환경에서 음향을 어떤 방식으로 접근하고, 아티스트와는 어떤 방식으로 음향을 조율해야 하는지 알 수 있는 무척 소중한 경험을 한 투어 공연이었다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이번 공연에 기술 스태프로 같이 참여해 음향 조감독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해준 경기 아트센터 김태균 무대감독에게 깊은 감사를 드린다.

클래식 전용 콘서트홀의 전경 (FOH 부스가 따로 마련되어 있지 않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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