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리포트 [APEC CEO SUMMIT KOREA 2025in 경주예술의전당]

*국가 주요 행사인 2025 APEC 정상회의는 최고 등급의 보안 지침이 적용되는 행사입니다. 자세한 시스템 및 행사내용 중 보안과 관련한 민감한 내용들은 지면으로 싣지 못함을 양해바랍니다. 

먼 나라 이야기인 줄 알았던 ‘세계의 축제’가 일상이 되다
2024년부터 APEC과 관련하여 이런저런 이야기가 돌았다. 경주에서 APEC이 열린다는 말이 들려왔지만, 그 일은 나와는 별로 상관없는 세계라고 생각했다. ‘세계경제’, ‘국제회의’, ‘정상들의 만남’ 같은 단어들은 내가 몸담고 있는 일상과는 너무 멀어 보였고, 경주예술의전당은 어디까지나 공연장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하는 공간이라 여겼기 때문이다. 그렇게 2025년을 맞이하며, 나의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간다.

APEC 정상회의의 부대행사인 CEO SUMMIT이 경주예술의전당에서 개최된다는 결정이 내려졌다. 처음엔 단순했다. 공연장 구조와 시설을 비교적 잘 알고 있다는 이유로, 정보를 묻는 연락이 하나둘 나에게 오기 시작했다. 건물 도면을 전달하고, 공연장 스펙을 설명하고, 공간 사용 가능 여부를 조율하는 일. 몇 건의 응대가 쌓이다 보니 어느새 나는 APEC CEO SUMMIT 경주예술의전당 시설 담당자가 되어 있었다.

2025 APEC 개최지경주 확정 기사
어마어마한 건수의  도면 및 자료 발송 내역

공연장 감독과 시설 안내원 사이, 그 묘한 경계에서

경주예술의전당 2025년 10월 스케쥴

행사가 다가올수록 공연장 방문객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공연과는 무관한 외부 인력들의 출입이 잦아지며 아찔한 상황도 연출됐다. 리허설 중인 무대에 외부인이 무심코 들어오거나, 텅 빈 객석의 문이 갑작스레 열리는 식이었다. 특히 각 부처의 대표급·장관급 인사들이 방문할 때면 공연장의 고유 스케줄은 후순위로 밀려나기 일쑤였다. 공연장 감독으로서의 원칙과 대형 국가 행사의 지원이라는 역할 사이에서 곤란한 적도 많았지만, 관계자분들의 배려 덕분에 고비를 넘길 수 있었다. 그렇게 10월에 접어들며, 경주예술의전당의 모든 공연 일정은 오직 APEC만을 위해 비워졌다.

예술의 전당, 세계 경제의 심장부로 탈바꿈하다

그 시간 동안 경주예술의전당은 완전히 다른 공간으로 탈바꿈했다. 장치 반입구가 공식 동선으로 결정되며 외관부터 내부까지 새로운 흐름이 만들어졌고, 공연장 측무대에는 가벽이 설치되어 정상 대기실과 오퍼레이팅 룸으로 사용되었다. 무대는 프로시니엄을 기준으로 전·후면으로 나뉘어, 객석 방향에는 대형 LED 월이 들어섰고, 무대 후면은 정상 회의 공간과 케이터링 룸으로 구성되었다. 익숙했던 공연장이었지만, 그 구조와 쓰임은 더 이상 내가 알던 모습이 아니었다.

무대세트 설치중인 경주예술의전당 화랑홀
VIP 동선으로 바뀐 공연장 반입구
정상 대기실과 케이터링 룸으로 바뀌고 있는 후무대

봉인된 문과 보안 검색대: ‘안전’이라는 이름의 긴장감

일정이 임박하면서 가장 중요한 화두는 보안과 안전이었다. 평소에는 크게 의식하지 않았던 내부 네트워크망의 보안이 강화되었고, 나 역시 처음 가보는 건물 내부의 구석구석을 점검하게 되었다. 폭발물 설치 우려로 인해 문이 열릴 수 있는 모든 공간은 봉인되었고, 점검구와 무대 바닥 포켓 하나까지 봉인 씰이 부착되었다. 출입 통제 역시 엄격해졌다. 정문을 제외한 모든 외부 출입구는 차단되었고, 메인 출입구에는 보안 검색대가 설치되었다. 바쁘다는 이유로, 혹은 급하다는 이유로 자유롭게 드나들던 공간은 아니었다. 한번 건물을 나서면 다시 들어오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필요했다.

열 수 있는 모든 곳에는 폭발물 설치 우려로 봉인스티커가 부착되었다.
(*봉인스티커는 실물 노출시 보안문제로 편집상 마스킹 처리하였습니다. )
보안 검색 때문에 건물에 들어갈 때 마다 이정도의 줄을 서야했다.

완벽한 소통을 위한 설계: ‘현장’을 넘어 ‘세계’로

이번 행사는 공연이 아닌 국제회의였기에, 음향의 핵심은 현장의 울림보다 ‘중계 품질’에 있었다. 경주예술의전당의 기존 시스템을 기반으로 하되, 각국 통역 신호가 중계기를 통해 실시간으로, 그리고 정확하게 전달되도록 세심하게 설계했다. 무대 위에서 나오는 단 한 문장, 한 단어도 지체 없이 전 세계로 퍼져 나가야 했기에 그 책임감은 여느 때보다 무거웠다.

세계 각국, 글로벌 CEO들이 사용할 프롬프트
방송화면에서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 
2025 APEC 정상회의 환영사 중인 SK 그룹 최태원 회장

세계 경제의 거물들 사이에서 느낀 짜릿한 전율

행사 기간 차량 출입이 전면 제한되면서 나는 매일 도보로 출퇴근하며 현장의 뜨거운 열기를 온몸으로 마주했다. 최태원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의 인사말과 함께 본 행사의 막이 오르자, 내가 지켜온 경주예술의전당은 순식간에 세계 경제 담론의 심장부로 변모했다. 세계 경제의 흐름을 결정짓는 글로벌 리더들 사이에 서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형언할 수 없는 묘한 전율이 느껴졌다. 각국 정상들과 CEO들이 쏟아내는 한마디 한마디에는 묵직한 무게감이 실려 있었고, 그 긴박한 현장의 공기를 단 순간도 놓치지 않으려 온 신경을 집중했다.

현장 시설 총괄을 맡은 권기홍 경주예술의전당 음향감독. 사진속의 좌석이 공식행사 중 BTS RM이 앉았던 자리이다. 
공식 연설 중인 도날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엔비디아 CEO 젠슨 황의 연설 장면
와인페어 현장. 누구나 세계 각지의 주류를 시음할 수 있었다.
2025 APEC 정상회의의 성공적인 개최에 이바지한 공로로 수여된 표창패

오감을 만족시킨 축제의 장, 그리고 화려한 피날레
행사장 밖 야외 광장은 또 다른 축제의 장이었다. 내빈과 기자, 스태프 등 수많은 방문객을 위해 푸드코트와 와인 페어 공간이 마련되어 눈과 귀는 물론 입과 코까지 즐거운 시간을 선사했다. 마지막으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연설문을 중국 상무장관이 대독하며 모든 공식 일정이 마무리되었다. 수많은 협의와 조율 끝에 얻어낸 ‘성공적인 국제회의’라는 평가는 그간의 고생을 씻어내기에 충분했다.

낯설지만 치열했던, 그래서 더욱 가치 있었던 2025년

돌이켜보면 나는 이 거대한 행사에서 단순히 공간을 안내하는 역할을 넘어, 전체가 원활하게 돌아가도록 돕는 ‘중요한 톱니바퀴’였다고 자부한다. APEC CEO SUMMIT은 끝났지만, 한 해 동안 겪었던 가장 낯설고 치열했던, 동시에 가장 밀도 높았던 현장의 기억은 내 안에 오랫동안 머물 것이다. 2025년, 경주예술의전당을 새로운 관점에서 경험하며 나는 한 단계 더 성장했다. 그 사실만으로도 올 한 해는 충분히 가치 있는 시간이었다.




답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