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해문화도시센터 조일웅 센터장

Prologue
유례없이 길고 지루했던 여름의 기운이 아직 계절의 끄트머리에 머물던 지난 10월, 우리는 경남 김해로 향했다. 2,000년 가락국의 역사를 간직한 채 전통과 현대, 그리고 미래가 공존하는 도시 이곳 김해에서, 마을 곳곳을 누비며 예술과 일상을 씨실과 날실처럼 엮어 온 이가 있다.
공연장 음향감독을 시작으로 탁월한 성과를 쌓으며 무대기술·공연기획·예술행정 등 그야말로 공연예술의 전 영역을 아우르는 스펙트럼을 갖춘 그는 그간의 현장 경험을 바탕으로 올 초부터 김해문화도시사업을 총괄하게 되었다.
마을 어르신들과 그림 전시를 만들고 동네 이야기를 노래로 올리고 다문화 청년들과 장단을 맞추며 주민들의 삶을 문화예술로 풀어내는 일. 25년여 공연예술의 최전선에서 엔지니어·기획자·행정가로 활약하며 몸에 밴 그의 경험은 김해문화도시센터 사업의 구석구석 진하게 묻어 있었다.
누구보다 바쁜 스케줄 속에서도 하루 반나절을 통째로 취재에 내어주며 이 또한 최선을 다하는 그의 모습에서, 우리는 많은 것을 느끼고 배울 수 있었다. 협회의 또 하나의 소중한 기록으로 남게 될 그 시간 속으로 함께 들어가 보자.
김해문화도시센터 사무실 전경
김해문화도시센터가 속한 김해문화관광재단 로고
같은 재단 소속의 김해문화의전당 전경. 
       김해문화도시센터도 이곳 전당 건물에 위치해 있다.  

안녕하세요 센터장님. 무대음향협회지 SSM입니다. 본인 소개와 걸어오신 길에 대해 간단히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십니까. 김해문화관광재단 문화도시센터의 센터장을 맡고 있는 조일웅입니다. 저는 군 제대 후인 1993년부터 지역 렌털 컴퍼니에서 음향 일을 시작했고, 프리랜서로 활동하다가 이후 2000년 성산아트홀에 입사하면서 공공 공연장에 첫발을 디뎠습니다. 2004년에는 김해문화의전당 조성사업 시 김해시 건축과 공무원 신분으로 입사했고, 1년 뒤에 문화재단으로 소속을 옮겨 현재까지 20년 정도 근무하고 있습니다.

초기에는 음향 엔지니어 역할을 하다가, 중간에 공연 기획, 복합문화공간인 김해서부문화센터 준비단 운영 총괄, 그리고 문화재단 행정/경영/기획 총괄 파트에서 5년간 일했습니다. 올해 초에 문화도시센터 센터장으로 자리를 옮기게 되었습니다.

현재 맡고 계신 ‘문화도시센터’는 재단 안에서 어떤 위치이고, 무엇을 담당합니까?

재단 조직이 크게 ‘3본부 1관 1센터’ 구조로 운영되고, 문화도시센터도 그 안에 들어 있습니다. 법정 문화도시로 지정된 도시의 사업을 총괄하는 역할이고, 김해는 2021년에 지정되어 법정 5개년 중 올해가 마지막 5년 차입니다. 비전은 ‘오래된 미래, 역사 문화도시’이고, 지역의 공동체 가치를 바탕으로 시민의 삶을 역사·현재·과거로 이어 주는 방향으로 3개 카테고리, 18개 사업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제가 맡은 주요 업무는 도시 문화정책 방향을 설계하고, 조직을 운영하며, 시민·예술가·행정을 아우르는 협력 조직(거버넌스)을 만들어 사업을 총괄하는 것입니다. 문화도시 업무는 예술 분야에만 국한되지 않고 광범위하여 노인정책, 인구정책, 도시건설, 문화유산 등 안 걸치는 과가 없을 정도로 많은 이해 관계자와 소통하고 협력해야 하는 역할을 맡고 있습니다.
또한 문화도시의 국비사업은 올해로 끝나지만, 시비로 내년에도 지속할 계획을 논의하고 있습니다. 김해의 공동체성과 문화 다양성을 바탕으로 지역 문화를 글로컬하게 확장하는 그림을 보고 있습니다.

무대음향협회 활동도 꽤 일찍부터 하셨죠. 부울경지부장 시절 이야기도 궁금합니다. 

협회 활동을 열심히 하다보니 자연스럽게 지부장까지 하게 된 것 같습니다. 현장의 기술인들이야말로 공연예술의 보이지 않는 중심이라고 생각합니다. 협회는 그 중심을 연결하는 소중한 플랫폼이었고, 서로의 경험과 지식을 나누며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지금도 그 시절 인연 덕분에 전국의 음향감독들과 긴밀히 소통하며 다양한 사업을 협력하고 있습니다. 특히 최근에 같은 엔지니어 출신으로 기관장이 되신 음향협회 모 선배님과는 업무적으로도 연락하며 교류를 이어 나가고 있습니다.

공연장 건립 계획부터 조일웅 센터장의
손길이 곳곳에 녹아있는 김해문화의전당.
국내 최초 가동 레일형 후면수납식 음향반사판의 구동부.
약 70톤에 달하는 거대한 반사판이 마치 기차 레일처럼 
바닥의 레일을 따라 안전하게 이동하는 구조이다.
김해문화의전당 마루홀 음향반사판 전경.
20년이 지난 현재도 설치 사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대단히 공을 들인 사례이다.  

음향 엔지니어로 시작해 센터장까지 오시게 되었는데 전환된 계기나 계획이 애초에 있으셨나요? 

애초에 개인적인 계획이나 목표로 조직 내에서의 직책을 전환하기란 불가능한 일입니다. 처음에는 공연장에 들어왔을 때 지금은 고인이 되신 고(故) 정정식 선생님을 모시고 일을 했었거든요. 원래 목표는 정정식 고문님같이 계속 한 우물만 파고 음향으로 퇴직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공연장에 들어와 입사 후 5년쯤 지났을 때, 기관장님의 권유로 공연 기획 업무를 겸직하게 되었고, 이후에는 공연 파트만 전문적으로 맡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복합문화공간인 김해서부문화센터 오픈 때는 공연장 건설 경험을 살려 준비단 운영과 스포츠센터를 포함한 전체 시설 관리까지 담당했습니다. 이후에는 재단 전체의 경영 및 기획 총괄 부서로 발령받아 5년간 일하게 되었습니다.

이 모든 과정은 계획이나 목표라기보다는 기관장님들의 신임 덕분이었고, 함께 일했던 동료 직원들의 도움이 컸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인복이 좀 많은 것 같아요. (웃음) 처음에는 다른 길을 가는 것이 쉽지 않았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그동안의 다양한 경험들이 큰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플래그쉽 음향장비들이 구비되어 있으며 개관 이후에도
꾸준한 유지관리를 통해 최상의 음향 환경을 유지하고 있다. 
다양한 공연에 맞게 최상의 음향을 제공하기 위해
국내 최초로 제작된 10:1 축소 모델링 Mock-up 모형으로 철저한 분석이 이루어졌다. 
최적의 어쿠스틱 환경을 조정하기 위한 객석 의자 흡음율 측정 실험
최적의 객석 음향 환경을 제공하기 위해 G.F.R.G 보드로 마감된 측벽

공연장 근무 경력만 총 25년 정도 되시는데, 가장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가장 기억에 남는, 그리고 좋았던 경험은 김해문화의전당 개관 준비 과정입니다. 당시 김해 시장님의 남다른 의지로, 공연장 개관 1년 전에 무대, 음향, 조명 3개 특장 시설 분야의 전문가를 미리 뽑아 시설 세팅 시 전문가 의견을 반영하도록 미션을 받았습니다. 특히 시장님의 적극적인 관심과 지원 덕분에, 하드웨어 세팅 과정에서 난항을 겪었던 설계 변경 건이 공무원들의 지원을 받아 적극적으로 추진될 수 있었습니다. 심지어 시장님의 지시로 해외(미국)에 8일간 나가서 선진 공연장을 둘러보고 온 내용을 설계에 반영하기도 했습니다. 지자체장의 마인드가 전문 공연장을 조성하는데 큰 역할을 한, 당시로서는 보기 드문 케이스였습니다.

그리고 가장 의미 있었던 공연 경험은 2007년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 한국어 초연 트라이아웃입니다. 한국어 공연 초연을 김해문화의전당에서 진행했는데, 오디션부터 무대 세팅, 연습까지 김해에서 모두 진행했습니다. 오리지널 측의 높은 요구 수준을 협업을 통해 원만히 조율하고 국내 최초로 무대에 올렸던 그 과정이 공연장을 통틀어 음향 쪽에서는 가장 기억에 남는 경험이었습니다.

기술 파트 출신 관리자로서 다른 파트와 소통할 때, 본인이 특히 신경 쓰는 포인트가 있을까요?

양쪽을 다 겪었기 때문에 무대가 원하는 언어와 타이밍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편입니다. 기획에서 무대로 넘어갈 때 언제, 무엇을, 어떻게 전달해야 덜 어긋나는지 그 순서와 방식을 챙깁니다. 새로 맡은 부서의 인적 관리에도 시간을 들이고요. 모르면 품을 들여 공부합니다. 소통의 기본은 이해라고 생각합니다. 행정은 계획·시스템이 중심이지만, 결국 성패는 현장에서의 실행력에 달려 있습니다. 공연 기술의 정확성과 꼼꼼함, 순간 판단력은 행정의 디테일과 전략 수립으로 그대로 이어집니다. 기술인 출신이기 때문에 좀 더 유리한 부분이었고, 그 지점을 살리려 노력합니다.

김해문화도시센터에서 추진한 대표 프로그램들을 소개해 주시죠.

네. 몇 가지 대표적인 사례가 있는데요, 세 가지 정도만 말씀드리겠습니다. 첫째 ‘토더기’는 김해문화도시를 대표하는 시민참여형 캐릭터입니다. 김해의 역사적 상징인 가야 토기에서 영감을 받아 탄생했고, 전문가 의뢰 대신 지역 청년 디자이너와 시민이 함께 제작에 참여했습니다. 김해의 문화와 시민의 삶을 담은 스토리, 표정·동작으로 발전해 김해시 공식 캐릭터로 선정, 지자체 캐릭터 대상도 받았습니다.
둘째 ‘김해피’는 “김해에서 피어나는 행복”이라는 뜻으로, 매년 10개 읍·면 마을을 선정해 찾아가는 문화 프로그램을 운영합니다. 문화 격차 해소와 문화 복지 확대에 힘쓰며, 어르신 공동체 돌봄으로 세대 교류와 마을의 정을 되살리고 있습니다.
셋째 ‘명월’은 김해 한옥체험관을 리모델링해 만든 복합문화공간입니다. 전통과 현대가 조화를 이루는 시민의 생활문화 거점으로, 전시·공연·카페 등 다양한 문화 체험이 가능하고 자연친화적 마당과 정원 덕분에 일상 속 문화 공간으로 사랑받고 있습니다.

김해시 공식 캐릭터로 지정된 토더기. 김해시 주촌면 망덕리 고분군에서 출토된 가야 시대 오리 모양 토기를 모티브로, 흙 토(土)와 오리를 뜻하는 영단어 Duck을 한글로 표기한 ‘더기’를 합성해 ‘토더기’로 지어졌다. 
김해의 대표적인 랜드마크인 연지공원 연못에 띄워진 거대한 토더기 조형물. 건물 3층 높이에 육박하는 10m 높이로 시민들에게 인기가 많다. 
토더기 캐릭터로 제작된 NFC 키링. 스마트폰 NFC 태그를 하면 김해시 공식 SNS, 토더기 배경 화면, 날씨, 토더기 굿즈 판매처 등의 정보를 제공한다. 
김해한옥체험관을 리모델링하여 조성한 복합문화공간 명월. 수로왕이 허왕후를 맞이하여 첫날밤을 보냈다고 전해지는 명월사에서 유래하였다. SBS 프로그램 ‘손대면 핫플 동네멋집’에도 소개되어 핫플레이스 명판이 입구에 걸려있다. 
복합문화공간 명월의 정원. 원래 주차장이 었던 콘크리트 바닥을 이끼와 아기자기한 소품으로 꾸며 시민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는 공간으로 재탄생하였다. 특히 야경이 일품으로 소문나있다.  
카페 명월의 시그니처 음료들. 단순한 음료가 아닌 스토리텔링과 접목한 아이디어가 돋보이는 구성으로 김해문화도시 사업의 디테일링을 엿볼수 있다.  (좌측 상단부터 시계 방향으로)
① 김해 특산물인 산딸기에 로즈플라워티 향을 더한 새콤한
     핑크빛 에이드 “수로왕 <약속>”
② 김해 특산물 장군차에 향긋한 자몽을 더한 아이스티 “명월”
③ 허왕후의 고국 아유타국(인도)의 아쌈티와 마살라차이향을
     더한 밀크티 “허왕후 <믿음>”

시민과 함께한 프로그램 중에 “아, 이건 정말 현장에서 힘이 나더라” 싶은 사례를 하나 들려주신다면요?

김해는 읍·면·동 가운데 면 단위가 몇 군데 있는데, 마을 10곳을 선정해서 어르신들과 공동체 사업을 했습니다. 글을 모르시던 분들이 직접 그림을 그려 전시하고, 자기 동네의 역사 이야기를 노래로 만들어 부르기도 했죠. “맨날 농사만 짓다가, 혹은 마을에서 고스톱 정도로 지내시던 분들이 무대에서 자기 이야기를 노래로 부르는 장면”을 보면, 그 표정에서 문화가 주는 활력이 그대로 보였습니다. 그게 제일 기억에 남습니다.

김해문화관광재단의 다양한 정보를 시민들과 공유하고 시민 참여 프로그램을 활성화하기 위해 조성한 ‘보이는 라디오’ 비디오 스튜디오 전경. 매주 화, 목 유투브 채널을 통해 만날 수 있다. 방송국 규모의 스튜디오 장비들을 외주 작업 없이 재단 직원들이 직접 운영한다고 한다.  
비디오 스튜디오와 함께 문화도시 센터에서 운영하는 오디오 녹음실 전경. 상업용 녹음실에 버금가는 플래그쉽 녹음 장비들이 가득하다. 이와 더불어 멀티미디어 강의실, 시청각실, 영상작업실, 편집실, 경남어린이영상문화관 등의 시설도 문화도시센터 소속 영상미디어팀에서 운영하고 있다. 
영상미디어 시창각실은 영화 상영, 특강, 세미나 등 다목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시설이다. 특히 최근에 보기 힘든 독립영화 상영관으로 인기가 높다고 한다. 

다문화 관련 사업도 소개하신 적이 있습니다. 어떤 프로젝트였나요?

김해는 가야의 역사와 다문화적 기반이 공존하는 도시입니다. 전통과 현대가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특성이 문화도시 사업에도 그대로 녹아 있습니다. 특히 외국인 근로자 수가 매우 많은 기초 지자체라 다문화 관련 사업의 비중과 중요도가 큽니다. 외국인 근로자 대상, 5개 국가 12명으로 ‘글로벌 사물놀이단’을 구성해 운영했습니다. 전국에서 처음이었다고 말씀드릴 수 있고, 이 팀이 공연을 하면 직접 현장에 가서 응원도 했습니다. 그런 시도들이 쌓이면서, 앞서 언급한 ‘토더기’ 같이 시민들이 만든 문화도시 캐릭터의 공공 활용이나 지역 슬로건 같은 것들도 실제 성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무대기술 스태프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으시다면 말씀해주세요.

공연의 완성은 무대 뒤에서 조용히 헌신하는 스태프 덕분입니다. 그들의 손끝 하나가 관객의 감동을 좌우합니다. 저 역시 그 길을 걸어왔기에 그 노고를 잘 압니다. 출연자의 니즈를 사전에 충분히 점검·파악해 현장의 시행착오와 소통 문제를 줄이는 데 신경 씁니다. 기술은 단순 노동이 아니라 예술의 한 축이라는 자부심을 잃지 않았으면 합니다. 그래서 저희 재단 내의 공연장 감독들이 속한 무대팀은 그런 이유로 무대기술팀이 아닌 무대예술팀으로 부르고 있습니다.

예술행정·기획에 관심을 갖고 있는 후배 감독들에게 조언을 주신다면요?

전공이나 대학원 등 아카데믹한 과정이 도움이 될 때도 있지만, 현장에서는 오히려 작품 선정·해석, 프로덕션 흐름, 마케팅 분석을 팀원들과 함께 공부하고 토론하는 게 더 실질적일 때가 많았습니다. 필요하다면 센터장인 저부터도 티켓 판매·홍보도 함께 뛰고, 현장에 나가서 안전 점검도 같이 하고 직접 몸으로, 발로 뛰어다니고 있습니다. 어떤 지위나 직책만을 보고 선택하기보다 본인이 진정 원하는 게 어떤 것인지 정확히 파악을 하고 거기에 맞게 준비를 하시는 게 가장 시행착오를 줄이는 길이 아닌가 싶습니다.

일을 그렇게 오래, 깊게 밀어붙이게 한 동력은 무엇이었나요? 슬럼프를 넘긴 방식도 궁금합니다.

무대는 늘 저를 성장하게 했습니다. 공연 하나하나가 제 인생의 교과서였고, 지칠 때는 이 무대를 기다리는 관객을 떠올렸습니다. 누군가의 하루를 행복하게 만드는 일이라는 자부심이 결국 다시 일어서게 했습니다. 지금도 그 마음은 같습니다. 무대가 도시로, 관객이 시민으로 확장되었을 뿐입니다.

워커홀릭 같아 보이시는데요. 쉬는 날은 어떻게 보내십니까?

(웃음) 쉬는 날, 글쎄요. 남들 쉴 때 우리가 일하는 구조라 주중에 쉬는 날이 가끔 생깁니다. 쉬는 날이나 퇴근 후에도 타 지역 축제·행사에 가서 여러 가지 아이디어를 얻어 오기도 합니다. 운동을 하고 싶긴 하지만 규칙적으로 하기 힘든 패턴이라 시간 날 때마다 평소에는 산책을 좋아합니다. 걷다 보면 생각이 정리되고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오르곤 합니다.

개인적인 목표나 향후 계획이 있으신지요.

개인적으로는 뭐 크게 거창한 인생의 목표나 그런 것들은 없고 지금 현재 내가 있는 이 상황에서 항상 최선을 다하는 거예요. 그리고 마지막에 남는 거는 사람입니다. 일도 사람이 하고 시스템도 사람이 도와주어야 가능합니다. 그래서 가장 가까이는 가족들도 중요하고 저하고 관계된 분들하고도 항상 소통하고 잘 지내는 게 목표입니다. 저희 모친께서 저에게 늘 “적을 만들지 말아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람들한테 모질게 하지 말고, 적을 만들지 말고 잘 소통해라.’
이런 저희 모친의 가르침이 제 인생의 좌우명이 된 것 같아요.
조직적으로 보자면 지금까지는 문화도시사업의 롤모델이 된 유럽 문화도시의 사례를 지속적으로 개발하고 발전시키려 노력해왔다면 김해문화도시센터의 사업이 지역을 넘어 우리만의 문화도시 모델로 자리 잡고 글로컬 문화도시로 확대해 나가는 것이 가장 큰 목표입니다.

감사합니다. 끝으로 우리 무대음향협회 선후배 동료 감독들과 SSM 독자분들께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우리 회원님들의 손끝에서 만들어지는 그 ‘소리’가 한국 공연예술의 품격을 높이고 있습니다. 무대는 언제나 사람의 이야기로 완성됩니다. 기술인으로, 예술가로, 그리고 한 사람의 동료로 함께 걸어온 모든 분들께 존경과 응원을 보냅니다.

Epilogue
음악과 공연이 좋아 음향으로 출발한 한 청년은
30여 년의 세월을 건너 어느덧 한 도시의 문화 정책을 설계하는 자리까지 오게 되었다.
수많은 밤, 드러나지 않는 무대의 뒤편에서 켜켜이 쌓아왔을 노력의 시간들이
그의 오늘을 만들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는 공을 자신에게서 떼어
동료와 직원, 주변의 사람들에게로 돌린다.
“사람이 전부다”라는 말을 습관처럼 꺼내며,
일일이 나열하기 힘들 만큼 방대한 문화도시사업의 속에서도
관계와 소통을 가장 앞에 둔다.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많은 것이 이해가 되었다.
그 끝을 짐작하기 힘든 그의 행보에 존경을 담으며
음향협회의 한 페이지를 갈무리한다.

메이킹 영상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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