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작하는 말
2년이 훌쩍 넘은 지난 2021년 4월 27일. 우리에겐 안타까운 소식이 전해져왔다. 미국의 레전드 사운드 엔지니어 알 슈미트가 91세의 나이로 영면하였다. 알 슈미트는 프랭크 시나트라, 헨리 맨시니, 샘쿡, 레이 찰스, 마일스 데비스, 제퍼슨 에어플레인, 잭슨 브라운, 닐 영, 조니 캐시, 윌리 넬슨, 케니 로저스, 스틸리 댄, 바브라 스트라이 샌드, 나탈리 콜, 마돈나, 퀸시 존스, 마이클 잭슨, 다이애나 크롤, 멜로디 가르도, 폴 매카트니2) 등 우리가 알고 있는 레전드 아티스트와 발자취를 함께 해온 프로듀서이자 사운드 엔지니어이다. 이번 글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남겼던 알 슈미트와 그가 참여한 명작 Unforgettable 음반의 제작 과정을 이야기해 본다.
알 슈미트
알 슈미트(Al schmitt)는 무려 91세까지 왕성히 활동하던 최고 엔지니어 중의 한 명이었다. 그래미상만 23번3)을 받았다. 56년부터 활동한 그는 음악사의 중요한 길목과 변곡점마다 이름이 등장하는데 가장 최근엔 2013년에 그래미상을 받았으니 우리 식으로 치면 은퇴하고도 남을 나이에도 전 세계 엔지니어들에게 많은 것을 남겼던 분이다. 사운드 엔지니어링에만 그치지 않고 전체 1,400여 번의 크레딧에서 2021년 닐 영(Neil Young)의 음반을 프로듀싱할 정도로 그동안 프로듀서로만 150번을 넘게 참여하게 된다. 정통 재즈부터, 퓨전, 알앤비, 발라드, 록 등의 장르를 뛰어넘고 시대를 관통하는 스펙트럼과 지칠 줄 모르는 열정, 그리고 실력은 진정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특히, 그는 60세가 되던 해인 1991년에 데이비드 포스터가 프로듀싱한 나탈리 콜의 [Unforgettable] 음반에 참여하면서 마법처럼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한다. 이 음반에 수록된 동명의 [Unforgettable] 곡은 당시 팝뮤직의 최고 디바였던 나탈리 콜과 50년대 레전드 크루너 가수였던 그녀의 아버지 냇 킹 콜이 듀엣으로 함께 불러 화제가 되었다. 아버지 냇 킹 콜은 그녀가 15살이 되던 해인 1965년 2월에 안타깝게도 사망하였고 무려 26년이 지난 1991년에 마치 환생이라도 한 듯이 부녀의 애틋한 사랑과 그리움을 노래하며 전 세계인의 심금을 울리게 된다. 비록 스크린에 비친 영상 속의 모습이었지만 세대를 뛰어넘어 냇 킹 콜의 목소리를 되살려낸 이 마법이 앞서 언급한 알 슈미트에 의해 펼쳐진다.
그는 LP 속에서 50인조 오케스트라 밴드의 반주와 혼재되어 있던 냇 킹 콜의 목소리를 과연 어떻게 환생시켰던 것일까?

(출처: https://www.facebook.com/photo/?fbid=10158513348558807&set=a.319046338806&locale=ms_MY)
Unforgettable, Unbelievable
냇 킹 콜이 불렀던 이 곡의 원곡은 1951년에 제작된 것으로 나탈리 콜과의 듀엣으로 리메이크되기 위해서는 그의 목소리와 오케스트라 빅밴드의 반주가 완벽히 분리되어야 한다. 지금은 역상 덮어쓰기 방식으로 MR을 없애고 보컬만 남기는 컴퓨터 기술로 가능한 일이지만, 이마저도 반주나 보컬 중 하나가 있어야 한다.
프로듀서이자 뉴에이지 음악가인 데이비드 포스터가 제작한 이 프로젝트가 급물살을 타기 시작한 건 이 곡이 녹음된, 당시에도 희귀했던 3트랙의 멀티 레코딩 방식의 테이프가 온전한 상태로 발견되면서 시작되었다. 지금처럼 보컬만 따로 분리되어 녹음되었더라면 다시 편곡된 곡에 냇 킹 콜의 목소리를 입히고 새롭게 나탈리 콜이 더빙하면 완벽한 음악이 가능했을 것이다. 하지만 멀티 트랙 레코딩이었음에도 독립된 부스가 없어서 따로 녹음되지 않았고 냇 킹 콜은 50인조 오케스트라 속에서 함께 노래해야만 했던 것이다. 이런 상태에서 알 슈미트는 많은 필터링으로 보컬을 최대한 살려보았지만, 여전히 듀엣곡에서 뮤트되어야할 부분과 나탈리 콜의 솔로 부분은 어색할 뿐이었다.
결국 조니 만델에 의해서 원곡과 똑같이 편곡하여 냇 킹 콜의 보컬 부분을 덮어버리는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하였다. 클릭 없이 지휘자에 의해 녹음된 원곡의 프리 템포를 얻기 위해 오랫동안 활동해온 드러머 솔 거빈이 휴먼 클릭을 만들었고, 이 템포 위에 당대 최고의 오케스트라 세션들이 참여해서 비로소 완벽한 반주가 만들어지게 되었다. 보컬에 묻어 있는 반주와 조금이라도 어긋나면 바로 어색함이 느껴지기 때문에 원곡과 흡사하도록 아주 정교하게 연주되었고 녹음되었다. 그렇게 만들어진 반주 위에 나탈리 콜의 보컬을 녹음했을 때 믹스된 음원이 아주 자연스럽게 들리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결과였다. 편곡에 의해서 듀엣과 솔로로 불릴 곳이 마치 하나의 반주인 것처럼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것이다.

이 모든 일련의 과정을 지휘한 사람이 앞서 언급한 공동 프로듀서인 알 슈미트이다. 알 슈미트는 마이킹도 일일이 하며 사운드 디자인까지 직접 했는데 냇 킹 콜은 노이만 U47이 사용되었으므로 나탈리 콜의 보컬에는 이것과 잘 어울리도록 U67을 사용하였다.
전체적인 오케스트라 사운드는 T자형 스탠드의 양끝단과 앞으로 나온 가운데 끝단에 3개의 노이만 M50을 설치한 데카트리(Decca Tree) 스테레오 마이킹 기법으로 녹음하였고 바이올린과 목관악기에는 노이만 U67, 첼로에는 노이만 KM84, 피아노에는 노이만 M149 페어, 일렉기타와 하프는 숍스 MK41, 업라이트 베이스에는 노이만 U47, 프렌치 혼에는 노이만 M49, 퍼커션에는 노이만 KM84와 AKG C452E의 조합으로, 그리고 드럼 오버헤드에는 AKG C451 두 개, 스네어와 탐에도 AKG C451, 킥에는 AKG D12를 사용하였다.

이처럼 개별 마이킹과 데카 트리의 절묘한 블렌딩으로 원곡보다 더욱 화사하고 아름다운 음악으로 재탄생하게 되었다. 그리고 알 슈미트의 마법 같은 믹싱으로 시대를 초월한, 아버지와 딸의 애틋한 그리움과 사랑을 완벽하게 되살려낸다.
그렇게 제작된 이 [Unforgettable:With Love] 음반은 전 세계에 1,100만 장4)이 팔리고 1992년 그래미상 올해의 앨범 등 7관왕, 알 슈미트는 61세에 최고의 엔지니어드상을 수상한다5). 영면에 들기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열정적으로 활동하던 그는 언제나 최고였고 우리의 기억에서도 최고로 남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