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악에서 33년 살아남기

어느 해엔가 조그만 아이가 가방을 메고 국립국악중학교 우륵당 앞에 앉아있었다. ‘뭐하러 왔니’ 하니 입학식 하러 왔단다. 이곳은 국악을 배우러 참 많은 학생들이 들어온다. 기악부터 성악, 한국무용… 한 학년에 120명 정도 입학을 한다.

초등학교 졸업 후 중학교에 들어와서 열심히 배우고 익히기를 몇 년, 어느새 소리를 내고 무용을 한다. 피리를 불던 아이는 고등학생이 되고 성장해 국악대회 상을 타고 공연을 한다. 상위 10% 정도는 수준급이 된다. 1년, 2년, 3년. 고등학교 3학년이 되니 대학 입시를 한다. 치열한 생존 경쟁. 어느새 졸업을 한다. 서울대, 예종, 이대, 그리고 각 대학들. 서울대를 가고, 연주단에 들어가고, 경연대회 대통령상을 타고. 그야말로 상위 5% 연주자가 되는 걸 본다.

이곳에 온 지도 어느새 30년이 넘는 지금. 그때 빈 가방 메고 입학하러 온 아이, 지금은 어느 대학의 국악과 교수가 되어있다. 그 교수의 딸은 이곳 중학교에 입학해 3학년이 되었고,  나는 이제 이곳을 6월 30일을 끝으로 퇴직 준비 교육을 간다.

이곳에서 퇴임식을 했다. 퇴임사를 하란다. 30년을 넘게 음향실에서 객석에서, 음향 작업을 하고 무대를 향해 무용 음악을 틀고. 무대만 바라보던 사람이 퇴임사를 한다고 무대 단상에서 객석을 바라보며 말을 하려니 참 떨린다. 음향 동아리 졸업생들이 수십 년 전 졸업 앨범에서 내 사진을 찾아 영상 편지도 만들고 준비를 많이 했다. 참 고맙다 다들…. 간단한 퇴임사를 하고 나니 눈물이 글썽거려 잠시 머뭇. 인생이라는 게, 또 인연이라는 게, 정이 있는 이곳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서인지 나중에 보니 학생, 선생님 모두 눈물이 나도 이상할 게 없을 퇴임식이 되어버렸다. 음향 동아리 학생들이 스승의 은혜 노래를 부르는데 왜 그렇게 눈물이 나던지…

내가 그래도 인생을 잘 살았나 보다. 성대한 퇴임식이 되어버려서 행복한 마음이다. 33년 2개월을 끝으로 퇴임식과 함께 국악의 요람을 떠났다.



유 승 호  국립국악고등학교 음향감독

∙ 前) (사)무대음향협회 사업국장
∙ 前) (사)무대음향협회 부이사장
∙ 국립국악고등학교 음향감독
∙ (사) 무대예술전문인협회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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