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부산국악원 주호일 책임음향감독

국립부산국악원 전경
Prologue
지난 6월, 여름 장마를 재촉하는 소나기가 오락가락 내리던 궂은 날씨 속에, 부산광역시 부산진구에 위치한 국립부산국악원을 찾았다. 국립민속국악원(남원), 국립남도국악원(진도)과 함께 국립국악원 산하 3개 분원 중 가장 나중에 개원했지만 사실 이 곳 부산은 1951년 한국전쟁 중 피란 상황에서 개원한 국립국악원의 뿌리가 처음 내린 곳이다. 이런 역사적 배경과 함께 지역 국악인과 부산시민들의 염원을 담아 2008년 10월, 국립부산국악원이 개원하여 올해로 벌써 17주년을 맞이하고 있다.
국립부산국악원은 영남권 국악의 전승과 창작, 교육을 아우르는 거점 기관이자 국악 대중화의 중요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 특히 부산을 중심으로 한 영남 지역의 국악 자산을 바탕으로, 지역 전통예술의 현대적 계승과 국악 인력 양성에도 힘쓰며, 국립국악원 전체의 균형 있는 지역 문화 확산, 더 나아가 K-컬쳐의 대표적인 콘텐츠인 국악의 세계화에 기여하고 있다.
이러한 국립부산국악원의 확고한 정체성을 든든하게 뒷받침하며 무대음향을 책임지고 있는 주호일 감독을 만나 가정과 직장, 학업 그리고 협회 활동까지 매사에 열정적으로 임하고 있는 그의 진솔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국악체험관 로비 대형 LED 전광판

안녕하세요 감독님! 무대음향협회 협회지 SSM입니다. 본인 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국립부산국악원에서 음향감독으로 일하고 있는 주호일이라고 합니다. 음향 일을 처음 시작한 건 2005년, 음향 렌탈 회사인 알파사운드에서였습니다. 그곳에서 일하면서 음향에 대한 기본부터 현장의 실무까지 차근차근 배울 수 있었고, 약 10여 년 동안 다양한 공연과 행사를 경험하며 선후배들과 함께 기술적인 성장과 노하우를 쌓을 수 있었습니다. 

이후 2018년에 (재)부산문화회관으로 이직하면서 본격적으로 공공 공연장의 음향 시스템과 운영에 대한 경험을 쌓기 시작했고, 약 6년간 근무하면서 공공기관의 음향 업무와 행정에 대해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지금은 그 경험들을 바탕으로 국립부산국악원에서 공연 음향 업무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뮤지컬 “오당신이 잠든사이” 지방투어의 음향 디자인
“그린플러그드-난지”음악패스티벌에서의 모니터 엔지니어

국립부산국악원에 근무하시게 된 계기와 공연장에 대한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국립부산국악원과의 인연은 음향 렌탈 일을 하던 시절부터 시작되었습니다. 당시 외주 음향팀으로 국악원 공연에 참여하면서 국악이라는 장르를 처음 접하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국악 음향에 대한 관심도 생겼습니다. 아무래도 평소에 접할 기회가 많지 않은 분야다 보니 관련 지식이 부족했지만, 현장에서 경험을 쌓으며 조금씩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이후 (재)부산문화회관에서 부산시립국악관현악단 공연을 직접 운영하게 되면서, 그동안 쌓아온 음향 경험이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국악 특유의 소리와 악기 특성을 고려해야 하는 공연들이었지만, 기존의 음향 지식들을 잘 활용해 큰 어려움 없이 운영할 수 있었습니다.

국악 음향 분야는 아직도 기술적으로 더 발전할 수 있는 여지가 많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국립부산국악원으로의 이직을 결정하게 되었고, 이곳에서 국악 음향의 기술적 정립과 새로운 시도를 함께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 멀티미디어 국악자료실

국립부산국악원은 국립국악원의 지역 분원으로, 두 개의 공연장을 갖추고 있습니다. 먼저 ‘연악당’은 686석 규모의 중대형 공연장으로, 우리 전통 악기인 용고를 형상화한 원형 외관을 지녔습니다. 내부는 일반적인 프로시니엄 형식으로 되어 있어 다양한 무대 연출이 가능합니다.

또 다른 공연장인 ‘예지당’은 276석 규모의 소공연장으로, 전통 돌담을 형상화한 외벽과 전통가옥의 마루 패턴을 적용한 바닥 디자인이 특징입니다. 이 역시 프로시니엄 형식으로, 비교적 소규모 공연에 적합합니다.

이 외에도 북카페와 야외마당 등 관객 편의시설이 잘 마련되어 있으며, 2023년에는 교육체험관이 새롭게 개관되어 국악 강습, 체험 프로그램, 열람실 등 다양한 문화 콘텐츠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재)부산문화회관에서 근무할 때 부산시립국악관현악단의 정기공연의 사운드 디자인
25년 국립부산국악원 기악단 정기공연의 디지털 앨범제작을 위한 공연 녹음

국악공연장으로서 일반적인 다목적 공연장과 구분되는 건축음향이나 무대음향(설비, 인프라) 차이가 있을까요? 

국악관현악은 비교적 최근에 창작곡을 중심으로 발전해 온 음악 형식으로, 다양한 국악기들이 함께 편성된다는 점에서 서양 오케스트라와는 다른 음향적 접근이 요구됩니다. 예를 들어, 가야금·거문고·아쟁 등 실내 연주에 적합한 현악기들과, 야외에서 사용되던 꽹과리·장구·북·징과 같은 타악기들은 각기 음량과 발산 방향이 상이하여, 이들을 하나의 관현악 체계로 통합할 경우 음향의 균형을 맞추기가 쉽지 않습니다.

이러한 음향적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일부 국악기들은 현대 관현악 환경에 적합하도록 개량되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사례로는 음역과 음량을 확장한 25현 가야금, 저음역을 보강한 대피리 등을 들 수 있습니다. 이러한 악기의 계량은 작곡가의 창작적 요구와 다양한 공연 환경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며, 국악관현악은 이러한 과정을 통해 지속적으로 진화하고 있습니다.

국립부산국악원 연악당

특히 국악기들은 음압(소리의 크기)과 발산 방향이 제각각이기 때문에, 대부분의 국악 공연에서는 마이킹과 스피커를 활용한 확성이 필수적입니다. 이는 자연 음향을 중심으로 운영되는 서양 클래식 음악 공연, 특히 콘서트홀에서의 방식과는 뚜렷한 차이를 보입니다.

국립부산국악원의 경우, 공연 형태가 매우 다양합니다. 전통 국악관현악뿐만 아니라 무용, 연희 등 복합 장르의 공연이 빈번하게 이루어지므로, 공연에 따라 자연스러운 음향을 지향할 때도 있고, 때로는 강한 음압과 생동감 있는 사운드를 전달해야 할 필요도 있습니다. 이에 따라 공연장의 음향 시스템은 섬세한 표현력과 충분한 출력을 동시에 구현할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습니다.

또한 국악은 서양 클래식 음악과 달리, 긴 잔향보다는 짧고 명료한 잔향이 더 자연스럽게 느껴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로 인해 잔향이 길게 설계된 클래식 전용 공연장에서는 국악의 음향이 다소 부자연스럽게 들릴 수 있습니다.

무대 인프라 측면에서 국립부산국악원은 웨건 무대와 회전 무대를 적극 활용하고 있으며, 무대 바닥 구조상 고정된 인프라 설치에는 제약이 있는 편입니다. 이에 따라 무선 마이크 시스템을 적극 활용하여 유연한 무대 전환과 음향 운영이 가능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공연장의 구조 자체가 오직 국악에만 특화되었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공연의 특성에 부합하는 음향 설계와 장비 운용 면에서는 뚜렷한 차별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 AVID사의 플래그쉽 콘솔인 S6L-48D. 이 외에도 SSL, Neve, GraceDesign, Manley, Bricasti 등 하이엔드 아웃보드들로 구성된 오디오 시스템은 국악당 공연장을 위해 최적화되어 운용되고 있다. 

현재 계신 공연장의 조직과 무대기술팀은 어떻게 운영되고 있을까요?  

국립부산국악원은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국립국악원의 지방분원으로, 공연장 조직은 국가직 공무원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특히 무대기술 부문은 방송무대 직렬의 공무원들이 담당하고 있으며, 무대팀은 공무원 외에도 기획단원, 공무직 인력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무대기술팀은 세부적으로 무대감독, 무대기계, 무대장치, 무대조명, 무대음향, 무대영상, 무대소품, 무대의상, 안전감독 등 총 9개 분야로 나뉘어 전문 인력이 배치되어 있고, 현재 약 20명이 무대기술 파트에서 근무 중입니다.

이 팀은 국립부산국악원의 상주예술단체인 국악연주단(기악단, 성악단, 연희단)의 정기공연 및 기획공연을 포함해, 각종 공연의 기술적 운영과 지원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국악연주단은 외부 초청 공연이나 지역 행사 등에 참여하기도 하는데, 이럴 경우에도 내부 무대기술팀이 가능한 한 현장 지원을 병행하고 있습니다.

정기공연이나 기획공연의 경우, 무대 디자인부터 운영(오퍼레이터)까지 자체적으로 수행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외부 제작팀과 협업할 때도 있지만, 기술적인 부분은 대부분 내부 역량으로 소화하고 있으며, 이는 공연장으로서의 자립성과 전문성을 유지하는 데 큰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자체 기획공연과 대관공연도 꽤 많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 같은데 공연 운영방식(음향팀 운영, 디자인, 오퍼레이팅, 대관 기술지원 등)이 어떻게 되는지 궁금합니다. 

현재 국립부산국악원 공연장 운영의 약 80%이상이 자체 기획공연과 정기연주회로 채워지고 있습니다. 정기공연의 경우 셋업과 리허설 일정등이 포함되어 2주정도 공연장 스케쥴이 진행됩니다. 그래서 대관공연이 차지하는 비중은 상대적으로 많지 않은 편입니다. 공연장 일정표에 표시되지 않더라도  실제로는 내부 제작 활동으로 무대가 계속 사용되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자체 공연의 경우, 기획 단계부터 제작회의, 디자인 회의, 연습 참관 및 진행, 음향·조명·영상 오퍼레이팅, 무대 진행, RF(무선 마이크) 운영까지 대부분의 과정을 내부 인력으로 소화하고 있습니다. 특히 음향팀도 공연의 특성과 연출에 맞춰 공연 전반을 세밀하게 준비하며, 연습부터 공연 종료까지 밀착 운영을 하고 있습니다.

다만 최근에는 공연 연출이 점점 복잡해지고, 무대 기술에 대한 요구도 다양해지면서 외부 전문 디자인팀이나 무대 기술 인력을 협력 인원으로 보강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복합적인 연출이나 특수한 장비가 필요한 경우에는 유연하게 외부 인력을 활용하여 완성도를 높이고 있습니다.

 한편, 대관공연의 경우에도 국악이라는 장르의 특성상 외부 단체에서 기술 지원을 요청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저희는 내부 일정이 허락하는 한 최대한 지원을 해드리고 있지만, 일정이 어려운 경우에는 외부 기술 감독을 별도로 요청하시도록 안내드리기도 합니다.

결과적으로, 자체 공연은 대부분 자체 인력으로 진행하며 공연 품질을 안정적으로 유지하고 있고, 대관공연 역시 국악원의 기술적 특수성을 고려해 유연하게 대응하고 있는 구조입니다.

국악 대중화와 보급, 역사적 보존을 위해 여러 매체를 통해 아카이빙 사업이 활발히 이루어지는 것 같습니다. 실황녹음이나 영상제작을 위한 후반편집 등 특히 음향팀에서 할 일이 매우 많을 것 같은데요 이와 관련한 업무들은 어떻게 진행하는지 궁금합니다. 녹음이나 레코딩 시 특별히 신경쓰고 계시는 부분이 있으시다면?

국악 공연의 아카이빙은 국립국악원 본원을 중심으로 전체적으로 관리되고 있습니다. 저희 국립부산국악원의 경우, 영상팀에서 공연 실황을 자체적으로 촬영하고 보존하는 방식으로 영상 아카이빙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다만, 후반 영상 편집이나 본격적인 실황녹음 제작·마스터링과 같은 전문 작업은 상시로 이루어지고 있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기악단의 창작곡을 정리해 음반으로 제작하는 작업은 매년 1회 정도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 프로젝트는 상황에 따라 외주 작업으로 진행되기도 하고, 여건이 허락되면 내부 인력으로 자체 진행하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올해는 예산 절감을 고려해 저희 음향팀이 직접 공연장에서 이틀간 5곡을 녹음했고, 이후 부산음악창작소의 스튜디오 협조를 받아 믹싱 작업을 진행했습니다. 마스터링은 외주로 맡겼습니다. 이러한 과정에서 녹음 환경과 후반 작업이 점점 중요해지고 있음을 체감하고 있으며, 장기적으로는 내부적으로도 녹음과 후반작업을 안정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환경을 구축하고자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공연의 경우 대부분이 라이브로 진행되지만, 일부 기획공연이나 특수 연출이 필요한 공연에서는 MR (반주음원)을 활용하기도 합니다. 특히 소편성 연주나 민감한 악기 구성이 필요한 경우, 현장 녹음과 편집이 어렵기 때문에 외부에서 별도로 녹음과 편집을 진행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녹음 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은, 각 국악기의 특성과 음색을 최대한 자연스럽고 정교하게 담아내는 것입니다. 서양 악기와는 달리 음압의 범위나 발음 방향성이 다르기 때문에, 마이킹 위치나 마이크 선택에서도 더 많은 고려가 필요합니다. 또한 녹음 공간의 잔향과 공연장 특성도 사운드에 영향을 주기 때문에, 공간의 특성에 맞춰 세심한 세팅이 필수적입니다.

향후에는 별도의 전용 녹음 공간이나 장비를 갖추어, 공연 외에도 창작 음악 콘텐츠의 제작 기반을 공연장 내에 안정적으로 구축하는 것이 저희의 장기적인 목표입니다.

이전에 계시던 공연장의 음향업무와 국악원에서의 음향업무에 차이가 혹시 있을까요? 

기본적인 공연장 운영 업무는 대부분 유사하지만, 국립국악원에서는 공연에 직접 참여하는 비율이 높아 업무 강도는 체감상 더 높은 편입니다. 특히 저는 현업 공무원으로 지정되어 있어 정해진 시간 외에도 공연과 관련한 업무를 유연하게 수행할 수 있어, 공연장에 머무는 시간이 이전보다 훨씬 길어진 것 같습니다.

이전 공연장(부산문화회관 등)의 경우, 외부 공연 단체들이 주로 대관을 통해 무대를 사용하는 방식이 많았기 때문에, 저희는 안정된 무대 운영을 위한 기술적 지원자 역할이 중심이었습니다. 따라서 공연장 인프라를 구성할 때도 다양한 공연 스타일을 수용할 수 있도록 고민하고 유연성을 확보하는 데 중점을 두었습니다.

반면, 현재 국립부산국악원에서는 공연장 운영의 주체가 저희 내부(연주단, 기획공연팀 등)이기 때문에, 인프라 구성과 운영 방식도 저희가 직접 경험하고 효율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방향으로 조정하고 있습니다. 무대와 음향 시스템, 동선 등도 내부 공연단의 특성에 맞춰 최적화되어 있는 편입니다.

  • Sennheiser Digital 9000 / 3000, Shure Axient 등 플래그십 무선마이크 시스템과 RF 전용 데스크를 독립적으로 운용하여 무대 전환이 잦은 국악 공연에 최적화된 무선 환경을 구축하고 있다. 

또 한 가지 다른 점은, 예산 집행과 관련된 행정 업무의 비중입니다. 현재는 음향 업무뿐 아니라 담당자로서 다양한 행정적 절차를 직접 수행해야 하다 보니, 기술 외에도 공문, 예산 관리, 계약 등 행정 영역의 역할이 많은 편입니다. 이 부분은 일반 공연장에서 근무할 때보다 확실히 차이가 나는 부분입니다.

장르적인 측면에서도 차이가 큽니다. 이전에는 클래식, 대중음악, 무용, 연극 등 다양한 장르의 공연을 접하며 폭넓은 경험을 할 수 있었던 반면, 국악원에서는 국악이라는 장르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물론 최근에는 퓨전 공연이나 서양악기와의 협업도 점차 늘고 있지만, 여전히 국악기의 특성과 음향적 특수성에 대한 이해와 확성이 중심이 됩니다. 덕분에 국악 장르에 대한 전문성을 깊이 있게 쌓을 수 있는 환경이라고 생각합니다.

일반적으로 음향감독들 사이에서도 국악음향은 쉽지않은 분야로 여겨지곤 하는데요 직접 겪어보시니 어떠신지.. 특별히 국악 음향에 대해 느끼신 점이 있으시다면 어떤게 있을까요?

실제로 국악 음향은 생각보다 훨씬 섬세하고 어려운 분야라고 느끼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국악 음향에 대해 체계적으로 정리된 자료나 연구 성과가 아직 부족하다는 점이 가장 큰 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서양 오케스트라의 경우 오랜 시간 동안 악기 편성, 잔향 환경, 마이킹 방식 등 다양한 기준이 어느 정도 정립되어 있지만, 국악은 지역별로 악기 구성이나 연주 스타일, 음향 밸런스가 다르기 때문에 정형화된 기준이나 매뉴얼을 적용하기가 어려운 상황입니다.

실제로 공연을 준비하거나 믹싱을 할 때도 저 혼자 판단하기보다는 음악감독, 예술감독, 연주자들과의 긴밀한 소통을 통해 밸런스를 맞춰가는 방식으로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아직 저 역시 국악에 대한 밸런스적 확신이 부족한 부분도 있고, 동시에 국악이라는 장르 자체가 워낙 다층적이기 때문에 현장의 예술가들과 함께 소리를 만들어가는 과정이 꼭 필요하다고 느끼고 있습니다.

또 한 가지 크게 느끼는 점은, 국악기들이 오랜 역사적 전통을 지닌 악기들이지만, 현대의 프로시니움 무대 공간에서 확성되어야 하는 환경에서는 여러 제약과 과제가 많다는 점입니다. 서양악기는 오랜 시간 무대 공간과 함께 발전해 온 반면, 국악기는 본래 야외나 작은 마루 공간 등에서 연주되던 악기들이기 때문에, 무대 환경에서의 소리 투사력이나 방향성, 음압 등에서 기술적 어려움이 더 크게 다가옵니다.

이런 현실을 고려했을 때, 국악기의 음향적 계량은 물론, 공연장을 위한 음향 기술의 표준화, 전문 인력 양성, 교육 커리큘럼 개발 등 여러 측면에서 국악 음향이 좀 더 전문화되고 연구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단순히 “어렵다”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만큼 국악 음향만의 기술적 정립과 발전의 여지가 많다는 의미이기도 해서, 지금 이 현장에서 함께 만들어간다는 점에 의미를 느끼고 있습니다.

25년  제18회 무용단 정기공연 
‘선락’의 공연에 사용된 국악기 마이크, 현악기의 경우도 사운드홀과 전체악기에서 나오는 사운드를 픽업하기 위한 마이킹을 사용했다.
25년 ‘유마도를 그리다’ 공연에 사용된 타악기 수음을 위한 마이크로 악기별 특성에 맞춘 다이나믹과 컨덴서 
마이크를 사용하였다.

그 동안 특별히 기억에 남는 공연이나 프로젝트가 있었다면 소개 부탁드립니다.  

2005년부터 음향을 시작해서 정말 수많은 공연에 참여했습니다. 잘 마무리된 공연도 있었지만, 솔직히 제 부족함이나 실수로 만족스럽지 못했던 공연들도 많았습니다. 초창기에는 선배님들께 많이 혼도 나고 실수도 반복했지만, 그 과정들이 지금의 저를 만들어줬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요즘엔 “덕분에 공연이 잘 끝났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작은 보람을 느끼고, 한 단계 성장하고 있다는 실감을 하곤 합니다.

공연 자체보다도, 특히 기억에 남는 경험은 전 직장에서 진행했던 ‘VR 가상 공연장 투어 제작 프로젝트’입니다. 당시 무대기술팀의 혁신 과제 중 하나가 ‘디지털 공연장 환경 구축’이었는데, 팀 회의를 통해 공연장을 VR로 체험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직접 만들어보자는 아이디어가 나왔습니다. 외주 제작도 고려했지만 예산 문제로 어려움이 있어서, 결국 저희 팀이 직접 제작에 나서게 되었죠.

당시 저는 VR 제작이 처음이라 관련 매뉴얼을 읽고, 유튜브 영상들을 참고하면서 전문가 수준에 최대한 근접해보려고 노력했습니다. 

VR 전용 카메라를 무료로 임대받기 위해 전주까지 출장도 다녀왔고, 2주 동안 2천 장 이상의 3D 촬영하며 공연장을 스캔하였고, 가상 공간을 구성해나갔습니다. 가상공간에서 무대기술팀의 자료들과 장비의 설명들을 구성했습니다. 낯설고 고된 작업이었지만, 사업이 완료됐을 때 조직 내부에서도, 팀원들 사이에서도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었고, 지금까지도 굉장히 의미 있게 기억에 남는 프로젝트입니다.

무대기술이나 음향이라는 분야는 늘 새로운 기술과 환경에 부딪히게 되는데, 그럴 때마다 처음이라는 이유로 주저하지 않고 도전해보는 자세가 정말 중요하다는 걸 느꼈습니다. 이 자리를 빌려 협회 회원 여러분들께도 ‘두렵더라도 도전해보시라’는 말씀을 꼭 드리고 싶습니다. 작은 시도에서 시작된 도전이, 뜻밖의 성과와 배움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걸 제가 경험했듯, 누구에게나 가능하다고 믿습니다.

  • 메타포트 프로그램을 활용한 VR 제작


국립부산국악원은 이미 최상급의 음향설비가 되어 있는 곳으로 유명한데요 향후 추가적으로 계획하고 계시는 시스템이 있을까요?  

현재 저희 공연장은 공연을 운영하는 데 정말 부족함이 없을 정도로 훌륭한 장비와 설비를 갖추고 있습니다. 다행히도 이 모든 것이 선배님들께서 오랜 시간 정성 들여 구축해주신 덕분에, 저는 편안하게 공연 업무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다만, 개인적으로 아쉬운 점을 꼽자면 ‘이머시브 사운드 디자인’이 좀 더 체계적으로 도입되었으면 하는 욕심이 있습니다. 지금은 LCR 스피커 구성으로 운영되고 있는데, 이 경우 스윗존(최적의 음향을 들을 수 있는 위치)에 한계가 분명히 있어서 객석 어디에 앉아도 균일하게 좋은 음향을 전달하는 데 어려움이 있습니다.

최근에는 외부 연출자분들의 요청으로 이머시브 공연을 약식으로 진행한 적도 있는데, 완벽하게 구축되지 못한 시스템의 한계 때문에 공연하면서도 아쉬움이 많이 남았습니다.

앞으로 이런 이머시브 사운드 환경이 제대로 갖춰진다면, 관객분들께 훨씬 더 세밀하고 몰입감 있는 음향 경험을 선사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습니다.

이머시브 공연을 위해 배튼에 스피커를 추가로 설치중이다.
이머시브 공연에 사용된 Yamaha AFC 시스템의 디자인 화면 

감독님의 개인적인 목표와 향후 계획이 궁금합니다.   

개인적으로는 국악이라는 장르에 대해 깊이 연구해보고 싶은 목표가 있습니다. 업무가 바쁘다 보니 쉽지는 않지만, 지금까지 쌓아온 경험과 자료를 바탕으로 국악 음향 분야에 관한 기술 논문도 써보고 싶습니다.

또한, 국악 음향 분야에서 전문성을 키워 기회가 된다면 국악 음향에 관심이 있거나 배우고자 하는 분들에게 저희 노하우를 나눌 수 있는 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싶습니다. 국악 장르가 더 널리 발전하고 자리 잡을 수 있도록 꾸준히 노력하는 것도 저의 중요한 계획 중 하나입니다.

공연이 없는 날은 주로 어떻게 보내시나요? 공연장 업무외에 좋아하는 일이나 다른 취미 활동을 하시는게 있나요?

오랫동안 특별한 취미를 깊이 있게 갖고 있진 않았던 것 같아요. 그때그때 주어진 환경에 맞춰 여가를 보내는 편입니다. 예전에는 수영을 몇 년간 배우기도 했고요. 공연 일정상 주말에도 출근하는 경우가 많아서 쉬는 날이나 특별한 날에는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요즘은 대학원 과정까지 병행하고 있다 보니 평일 야간이나 주말에도 가족과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이 더욱 부족한 게 사실입니다. 그래서 하루 정도라도 가족들과 온전히 시간을 보낼 수 있는 날이 생기면 그 시간이 더욱 값지고 소중하게 느껴집니다. 또 가끔은 남들이 만든 공연을 관람하면서 스스로 리프레시하는 시간을 갖기도 하는데, 그런 경험들이 제게 또 다른 배움으로 다가오기도 해요.

부울경지부 총무도 오랜기간 하시고 협회활동도 남다르게 열심히 하시고 계시는데 협회원들에게 전하실 말씀과 SSM 독자분들께 한말씀 부탁드립니다!

어느 날 선배 음향감독님께서 전화를 주셔서 “이제 일을 좀 해야 하지 않겠냐”고 하시더라고요. 그렇게 시작된 총무직을 겁 없이 맡아 2년 동안 협회 활동에 힘을 쏟게 됐습니다. 예전에는 회원으로 활동하는 입장이었다면, 감투를 쓰고 일해보니 그 무게가 참 다르다는 걸 실감했습니다. 선배님께서는 “별로 할 일 없다”고 하셨지만, 막상 해보니 하나하나 신경 써야 할 일이 정말 많더라고요.

부족한 부분도 많았지만, 협회 회원분들께서 잘 따라주셔서 저에게는 굉장히 소중하고 값진 경험이었습니다. 

지금은 새로운 회장님과 총무님께서 부울경 지부를 잘 이끌어 주시고 계셔서, 늘 감사한 마음으로 지켜보고 있습니다.

협회 활동이 처음에는 어색하고 낯설 수 있지만, 막상 용기 내어 참여해 보면 얻는 것이 정말 많습니다. 인적 네트워크는 물론이고, 다양한 현장의 이야기를 나누며 음향감독으로서의 시야도 훨씬 넓어집니다. 아직도 주변에는 그런 어색함 때문에 참석을 망설이시는 분들이 계신데요, 꼭 용기를 내셨으면 좋겠습니다.

앞으로도 SSM 독자 여러분께 좋은 소식을 전해드릴 수 있는 음향감독이 될 수 있도록, 늘 겸손한 자세로 노력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pilogue
인터뷰와 동시에 공연장 건축 음향 측정도 병행하며 촉박한 일정을 소화하는 내내, 꼼꼼하고 세심하게 취재진을 배려해 주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짐작컨대, 공연장에서 주호일 감독을 필요로 하는 모든 사람들에게도 그러하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몸에 밴 것이다.
렌탈팀부터 오랜 시간 동안 '음향'이라는 화두로 - 아무래도 평생을 그렇게 살아갈 것 같은 - 주호일 감독의 말과 몸짓은 음향이 천직인 듯 너무도 자연스럽고 진지하다. 그리고 그 마음 깊은곳에는 어린 시절부터 무수히 흘려 왔던 값진 땀의 무게가 고스란히 배어 있었다.
앞으로 국립부산국악원, 나아가 국립국악원의 무대 음향을 그려 나갈 그의 계획과 포부 또한 무한한 신뢰가 가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 자리에 그가 있기 때문에.

긴 시간 인터뷰와 공연장 건축음향 측정에 협조해주신 국립부산국악원 관계자 및 주호일 책임음향감독님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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